한국 자동차업계가 ‘생산절벽’에 빠졌다. 지난해 연간 400만 대 생산을 밑돈 데 이어 올 1월 생산도 전년 동기 대비 30% 가까이 급감했다.
1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자동차 생산량은 25만1573대로 지난해 같은 달(35만4305대)보다 29.0% 감소했다. 국내 자동차 월 생산량이 25만 대 초반에 머문 것은 여름 휴가철(8월)을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이러다 연 300만 대 생산도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국계 3사 생산 급감지난달 국내 자동차 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29.0% 급감했다. 특히 한국GM·쌍용자동차·르노삼성차 등 ‘외국계 3사’의 실적이 악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쌍용차(8646대)와 한국GM(2만606대)의 생산량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8.4%, 55.7% 급감했다. 르노삼성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50.1%(1만4737대→7359대) 감소했다. 지난달 설 연휴가 낀 데다 일부 업체가 부분파업을 하면서 조업일수가 줄어든 영향이다.
생산 감소는 이달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산 부품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여전히 국내 공장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중국 부품 공장이 재가동에 들어갔지만 현대차의 공장 가동률은 대부분 50%를 밑돌고 있다. 울산 1공장의 가동률은 25%에 그치고, 아산공장 가동률도 35%에 머물러 있다. 빈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공피치가 많다는 전언이다. 기아차 소하리공장은 애초 14일 가동을 재개할 계획이었지만 와이어링 하니스(차량 내에 쓰이는 전선 다발) 물량이 부족해 18일로 가동 일정을 재조정했다.
내수·수출도 경고등지난달 설 연휴와 부분파업 등의 영향으로 국내 자동차의 내수와 수출도 일제히 감소했다. 지난달 국산차 내수 판매는 11만6153대로 전년 동기 대비 14.7% 감소했다. 영업일수가 줄어든 데다 개별소비세 감면 혜택 종료로 소비자의 구입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수입차를 포함한 국내 승용차 판매는 신차 판매 호조에도 불구하고 작년 같은 달보다 15.9% 줄어든 9만8755대로 집계됐다. 국산차의 국내 판매가 10만 대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13년 2월 9만9534대를 기록한 후 6년11개월 만이다. 지난달 수입차 판매는 7.0% 줄어든 1만7398대였다.
지난달 수출도 28.1% 감소한 15만974대에 머물렀다. 일부 업체의 파업과 조업일수 감소, 한국GM의 유럽 수출 중단, 르노삼성 로그 수탁생산과 수출 물량 감소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생산목표 하향 조정도올해 생산 목표도 하향 조정되고 있다. 기아차는 올해 생산 목표를 작년보다 낮춰 잡았다. 기아차는 12일 노조를 대상으로 연 사업계획설명회에서 올해 국내 공장 생산목표를 142만7000대로 잡았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생산 실적(145만102대) 대비 1.3% 낮춰 잡은 것이다. 2018년(146만9415대)보다는 2.9% 낮은 수준이다.
기아차의 올해 글로벌 판매 목표는 296만 대로 작년 판매 실적보다 4.9% 많다. 국내외 판매 실적은 높여 잡으면서도 국내 공장 생산 목표는 낮춰 잡은 것이다. 국내 생산은 줄이는 대신 해외 생산을 늘려 판매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지난달 생산이 30% 가까이 줄어든 데 이어 이달도 부품 공급 차질로 인한 가동 중단으로 생산이 최대 40%가량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글로벌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판매 부진이 심화할 경우 올 국내 자동차 생산량 300만 대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전년 대비 1.7% 감소한 395만 대로, 2009년(351만 대) 후 처음으로 400만 대가 무너졌다.
도병욱/박상용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