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효과가 있다는 약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에이즈 치료제가 주목받았고 에볼라와 C형 간염 치료제에 이어 최근에는 독감 치료제까지 거론되고 있는데요. 이들은 모두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항바이러스제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해 임상시험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이런 약물들은 가능성이 있는 후보군일 뿐입니다. 열쇠를 만들 시간이 없으니 있는 열쇠를 다 꺼내서 맞춰보고 열리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환자에게 약을 투여하려면 원래는 동물과 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해 독성을 테스트하고 그 다음 환자에게서 효과를 보여야 하는데요. 신종 코로나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이 없고 상황이 급박하다보니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기존에 허가를 받은 약물은 안전성과 효능이 어느 정도 입증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우선 환자에게 사용해보는 겁니다.
신종 코로나 사태 초기에 에이즈 치료제가 사용된 이유는 지질로 된 막으로 둘러싸인 외피 보유 RNA 바이러스라는 공통점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 환자에게 투여한 애브비의 '칼레트라'는 로피나비르와 리토나비르 성분으로 이뤄진 에이즈 치료제인데요. 바이러스 증식에 필요한 효소의 합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약물은 2004년 사스 환자의 증상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태국에서도 70대 중국인 여성 환자에게 칼레트라와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오셀타미비르)를 투여했는데 증상이 48시간 만에 호전됐습니다. 이 환자는 열흘 간 증세가 나아지지 않다가 약물 치료를 받고는 증상이 나아졌는데요. 환자들이 10일 이후 상태가 회복되는 양상을 볼 때 약물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국내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1번과 4번 환자도 칼레트라를 투여받았습니다. 1번 환자는 입원한지 11일 만에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고 퇴원했죠. 하지만 에이즈 치료제 중 일부는 효과가 좋지 않고 부작용만 크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가 신종 코로나에 효과가 있는지 시험 중입니다.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라는 약물입니다. 이 약도 RNA 바이러스의 복제를 방해해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동물시험에서 사스 바이러스 억제 효과가 확인됐지만 신종 코로나에도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C형 간염치료제인 소발디(소포스부비르)와 리바비린이 신종 코로나를 억제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RNA 중합 효소를 3차원으로 모델링한 결과, 이 두가지 약물이 결합할 수 있다는 이론상 근거를 발견한 건데요. 가상 시험이기 때문에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이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체외세포실험에서 독감 치료제인 아르비돌(사진)이 억제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언급된 약물들은 신종 코로나에 작용하는 기전이 불분명하고 특정 환자에게서만 효과를 보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상반응이 나타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사스나 메르스 치료제가 있다면 신종 바이러스에 가장 적합한 약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현재로서는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요. 퍼즐 조각처럼 딱 맞는 치료제가 나올 확률은 그리 크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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