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의 수익성은 정제마진에 의해 결정된다. 정제마진은 생산된 석유제품의 가중평균 가격에서 투입 원유의 유가를 차감한 것으로 수익성의 기본 지표다. 그러나 한국, 일본과 같은 100% 원유 수입국은 정제마진 외에 다른 두 개의 변수가 수익성에 영향을 준다. 유가 추세와 원·달러 환율이다. 우리가 원유를 구매할 때 지불하는 가격은 대부분 선적지 기준가다. 중동에서 유조선에 실린 유가가 구매가이고, 한국까지 운반되고 설비에 투입되는 기간이 대략 한 달 이상 걸려 이 기간 유가가 상승하면 정제마진보다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원·달러 환율 역시 완만한 상승(평가절하)이 좋다. 즉 정유업에 가장 좋은 상황은 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완만히 올라갈 때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는 큰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정유업의 실적 변동성이 다른 섹터에 비해 크게 나타난다. 중동과 북미업체에 적용되지 않는 비산유국의 특수성이다.
○5년 전부터 중국 변수 부상
2015년부터는 중국 변수가 작용하기 시작했다. 2015년 이전 한국의 석유제품 수출량은 동북아시아 국가 중 단연 1위였다. 하지만 2015년 이후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량이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수출량 규모에 따라 정제마진이 크게 영향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해 3~4월, 11~12월에는 중국 석유제품 수출량이 급증해 정제마진이 역사적 저점 수준까지 곤두박질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도 항공유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2002년 겨울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인해 2003년 한국의 항공유 수출 증가율은 전년에 비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연간 수출량 기준으로 36.4%까지 감소했다. 물론 시장 규모 측면에서 그때와 지금은 분명 다르다. 2002년 중국의 항공 여객 수는 1억7000만 명이었으나 2018년에는 12억6000만 명으로 7.4배 증가했다. 수요 감소율이 사스 사태 때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절대 규모 측면에서는 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황 함량 규제 조치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커진 상황이다. 해상 연료의 황 함량규제로 저유황연료유(LSFO) 가격은 급등했으나 전반적인 해상 연료의 가격 강세로 유조선 운임비 역시 상승했기 때문이다. LSFO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과 원유 구매 비용 증가에 따른 손실을 감안할 때 ‘IMO 2020' 조치가 긍정적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변신 요구받는 정유업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한 지속가능한 글로벌 100대 기업 중 1위 기업은 덴마크 국영 에너지 기업인 외르스테드(Orsted)였다. 외르스테드는 원유 및 가스 자원관리를 위한 국영기업으로, 2000년 초반 전력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2017년 석탄발전을 2023년부터 중단하겠다고 발표했고, 원유·가스 업스트림(Upstream) 부문을 모두 매각했다. 현재 사업구조는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와 바이오에너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25.8% 수준이다. 외르스테드는 2018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사업구조 변환에 성공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 기업으로의 성공적인 변화는 외르스테드가 글로벌 1위의 지속가능기업으로 선정된 근거가 됐을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은 2030년 전후로 원유 수요가 최고치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 시점이 몇 년 늦춰지더라도 대세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원유만 팔던 중동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공사인 아람코를 중심으로 정제 설비 신규 투자 및 조인트벤처를 통해 정제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원유를 파는 것보다 제품을 파는 것이 수익성 및 고용 창출에 더 긍정적이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과의 경쟁은 무의미할 것이다.
현재 한국 정유기업들의 방향성은 석유화학 또는 2차전지 사업의 확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의 필요성은 자발적인 영역에서 강제적인 영역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분명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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