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로 불리는 새 세금이 2~3년 내 등장할 전망이다. 미국 영국 한국 등 137개국이 지난 주말 ‘다국적 기업 조세회피방지대책’ 관련 다자협의를 열고 디지털세 기본 골격에 합의했다.
이번 합의로 ‘고정 사업장’이 없는 나라에는 법인세를 안 내도 된다는 국제 조세원칙이 무너졌다. 적용 범위도 구글 페이스북 같은 거대 정보기술(IT)기업을 넘어 글로벌 제조기업으로까지 확대돼 적잖은 파장을 예고한다. ‘자국 기업만 부담이 늘어선 안 된다’는 미국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되면서 제조업으로도 불똥이 튀었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같은 한국 수출 대기업들이 디지털세를 부담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디지털세는 다국적 기업의 세금을 어디서 더 거둘 것인가 하는 관할의 문제여서, 개별 기업의 총 세금 부담이 늘지 않는 점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법인세수 부담액이 큰 국내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외국 정부에 디지털세를 내야 하는 만큼 국내 세수(稅收) 감소는 불가피하다. 법인세는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30%에 달할 만큼 핵심 세목(稅目)인 데다, 상위 100대 기업의 법인세 점유율도 23%(2018년 기준)로 고공비행 중이다.
디지털세의 구체적인 과세 방법이 미정이라 세수 타격이 어느 정도일지 불명확하지만, 급변하는 국제 조세환경에 맞춰 국내 세제를 정비하는 작업이 시급해졌다. 행여라도 줄어든 법인세수를 세율 인상으로 보전하겠다는 땜질식 발상은 금물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은 22.4%(2017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27개국 중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차제에 부가가치세 소득세 등 주요 세목의 적정성도 종합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부가세율은 10%로, 프랑스(20%) 독일(19%) 일본(10%) 등 주요국에 비해 높지 않다. ‘원칙 있는 세정(稅政)’이 이뤄지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중산·서민층에 대한 비과세가 남발되면서 ‘소득 상위 1%’의 소득세 점유율은 41.8%(2017년)에 달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대원칙도 무시돼 소득세 면제율 역시 38.9%로, 미국(30.7%) 캐나다(17.8%) 호주(15.6%) 일본(15.5%)보다 월등히 높은 게 현실이다.
뒤틀린 세제를 바로잡기에 앞서 재정 구조개혁도 선행돼야 한다. ‘GDP의 3% 이내’를 불문율로 지켜온 재정적자를 3.9%로까지 확대하겠다는 국가재정운용계획으로는 나라살림의 부실화를 피하기 힘들다. 복지 확대를 빙자한 선심성 ‘용돈 뿌리기’부터 바로잡고 ‘부자 벌주기’ 수단으로 기울고 있는 부동산 세제도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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