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정책 시행 이후 사립대의 재정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전국의 사립 4년제 일반대와 전문대 전체의 재정적자 규모는 3808억원(2018년 기준)까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등록금 규제가 풀어지지 않으면 수년 내 지방 사립대부터 줄줄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한국교육개발원의 ‘고등교육 정부 재정 확보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사립대의 운영수지는 ‘반값 등록금’ 정책이 시행된 2009년 이후 급격하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수지는 등록금 수입과 국가보조금, 기부금 등 대학 운영수입에서 교직원 보수, 관리운영비 등 운영지출을 뺀 수치다. 전체 사립대의 운영수지 흑자 규모는 2009년 4조8001억원에서 ‘반값 등록금’ 정책 시행 1년 만에 2조1985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이후에도 사립대의 운영수지는 매년 악화돼 2015년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2018년 기준 전체 사립대의 적자 규모는 3808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보면 2012년 광주 세종 전남 등 3개 지역 사립대의 평균 운영수지가 처음으로 적자로 바뀌었다. 적자로 전환한 지역은 매년 늘어 2018년에는 17개 시·도 중 14개 지역의 사립대 평균 운영수지가 적자였다. 줄곧 흑자를 기록하던 서울지역 사립대도 2018년 처음으로 평균 운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재정상황이 파탄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지만 사립대들은 주요 수입원인 등록금을 인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가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 학교를 등록금 인하·동결 대학으로 한정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등록금 인상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2020학년도 등록금을 결정하는 등록금심의위원회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지만 등록금 인상을 택했다는 대학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 서울 주요 사립대는 물론 동양대와 조선대, 동아대 등 지방 사립대도 등록금 동결 행렬에 동참했다.
지방의 한 사립대 총장은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등록금 인상을 택할 수 있는 학교는 한 곳도 없다”며 “재정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는데 등록금은 묶여 있다 보니 문 닫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사립대의 재정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등록금을 묶어놓는다면 고등교육 인프라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학령인구 감소까지 겹쳐 신입생마저 줄어들면 서울에서 먼 지방 사립대부터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교육개발원도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대학에 대한 자율성 침해를 지적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등록금 수입이 대학재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정부의 제도적 제한이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며 “대학 운영의 자율성을 높이고 재정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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