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이후 올해 초까지는 국제통화질서 역사상 가장 긴박했던 시기의 하나로 평가된다. 위안화 평가절하 문제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환율전쟁을 치르기 일보 직전까지 갔기 때문이다.
위안화 가치는 미·중 무역마찰의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마찰이 심화되면 ‘절하’, 진정되면 ‘절상’되기 때문이다. 작년 5월 10일 미국의 보복관세가 부과되기 직전까지 달러당 6.6위안대로 절상되던 위안화 가치가 그 후 추세적으로 절하되면서 넘지 말아야 할 포치(破七), 즉 ‘1달러=7위안’ 선도 뚫렸다.
그 누구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황했다. 위안화 절하는 자신이 주력해온 보복관세 효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포치선이 뚫리자마자 곧바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1995년 역(逆)플라자 합의(달러 강세 유도 협정) 이후 사라진 ‘환율 조작의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다른 교역국에까지 충격을 줬다.
작년 8월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은 두 가지 점에서 미국의 전통을 지키지 않은 파격적인 조치에 해당한다. 하나는 예정된 ‘시기’를 지키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정해진 ‘규칙’을 어겼다.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조치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의회 승인 없이 행정명령으로 100% 보복관세를 매길 수 있다. 무역적자 축소와 함께 ‘2020 대선’에서 최대 약점인 재정적자를 관세 수입으로 메울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로 취임 직후부터 시기가 문제일 뿐 언젠가는 지정할 것으로 예고돼 왔다.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중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가는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최대 관심사였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대폭 절하하고 미국도 달러 약세로 맞대응할 경우 환율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직전 상황과 비슷하다는 우려가 나온 것도 이 시기다.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중국은 무역과 환율의 비연계성을 강조했다. 위안화 대폭 절하 대응은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경상거래 면에서 수출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자본거래 면에서는 자본 유출을 초래해 금융위기 우려가 높아진다. 중국의 대외 위상을 높이는 ‘팍스 시니카’ 구상도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1차 무역 협상안 공식 서명 마감일 직전 미국은 중국에 취한 환율조작국 지정을 전격 해제했다. 화답이라도 하듯 중국도 앞으로 2년 동안 미국산 제품을 2000억달러어치 이상 구매키로 약속했다. 양국 간 무역마찰에 따른 세계 가치사슬 붕괴로 ‘침체’ 일보 직전까지 몰렸던 세계 경제로 봐서는 다행한 일이다.
궁금한 것은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해제와 1차 무역 합의안 서명 이후 양국 간 환율 전쟁에 대한 우려가 해소됐는가 여부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No’다. 계획대로 올 상반기 중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한다면 오히려 더 복잡한 환율전쟁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할 경우 의외로 빨리 정착될 여건이 형성돼 있다. 통제력이 강한 중국으로서는 내부적으로 디지털 위안화를 정착시키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국제적으로도 세계 1위 수출대국으로 부상한 점을 감안하면 경상거래부터 디지털 위안화 결제 비중이 빠른 속도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발행 계획을 발표한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디지털 통화 시대가 닥칠 것에 대비해 오래전부터 대책반을 구성해 준비해왔다.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별도로 ‘디지털 달러화’를 언제든지 발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 있다는 평가다.
양대 경제대국인 중국과 미국이 디지털 통화를 도입한다면 현재처럼 시스템이 없는(non system) 국제통화질서에 커다란 변화가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기축통화 면에서 디지털 위안화가 발행된 이후에는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그리고 디지털 달러화가 도입한 이후에는 디지털 위안화와 2차원적인 환율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환율조작국 지정 해제 직후 발표된 미국 재무부 환율 보고서에서 중국에 대해 종전의 지위인 ‘환율관찰대상국’을 그대로 유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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