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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이사 의무할당제' 도입…경제계 "기업 경영 자율성 침해" vs 여성계 "유리천장 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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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이사 의무할당제’ 도입…경제계 “기업 경영 자율성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 vs 여성계 “유리천장 깨기 위한 긍정적 시도”

198개 민생법안 표결이 진행 중이었던 지난 9일 국회 본회의. 여야 합의대로 법안이 통과되는 도중 민병두 정무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자본시장법 개정안 수정안이 사전 상의없이 상정됐다. 자본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여성 이사를 한 명 이상 두도록 ‘의무조항’을 삽입하는 내용이었다. 본회의장엔 “이 수정안에 찬성하면 돼”란 목소리가 울려퍼졌고, 본회의에 불참한 채 밖에서 지켜보던 한국당 의원들은 “여야 합의와 다른 수정안이 올라왔다”며 술렁였다. 민 의원은 여성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경영계와 야당은 “금융위원회와 법사위 전문위원 조차도 ‘경영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반대한 법안을 여당 멋대로 수정해 통과시켰다”고 반발했다.

금융위와 수석 전문위원 반대

여당 주도로 ‘4+1협의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가 통과시킨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이 법안은 ‘자본 2조원 이상 상장사 이사회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기업 의무로 규정했다. 최소 여성 이사를 한 명은 둬야 한다는 뜻이다. 본회의 전단계인 법사위에서 여야는 ‘노력한다’ 정도의 권고 조항으로 합의했지만 여당이 의무조항을 넣은 수정안을 올려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보수 야당은 법무부의 검찰 인사에 반발해 본회의에 불참한 상태였다.

최운열 민주당 의원이 2018년 10월 최초 발의한 이 법안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개정안 초안은 ‘특정 성의 이사가 이사회 정원의 3분의 2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였다. 다시말해 이사진의 3분의 1은 의무적으로 여성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상임위에서 전체 이사진의 “3분의 1은 과도하다”, “의무공시도 기업 부담이 크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법률 소관부처인 금융위원회와 국회 전문위원의 반대도 있었다. 전상수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민간 영역에 성별 구성을 의무규정으로 도입하는 것은 영업의 자유 및 사적자치 측면에서 재검토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처벌조항이 따로없다는 의견에 대해선 “위법하게 될 경우 이사회 결의 효력 등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사실상 강행규정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역시 “기업에 강제해 부담을 주면 곤란하기 때문에 ‘노력하여야 한다’ 정도의 선언 규정으로 해야한다”는 의견을 냈다. 결국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의무조항을 빼고 “노력한다”는 권고 조항이 삽입된 채 법사위를 통과했다.

“이사 선임 대란 일어날 것”

상임위 합의와 다른 법안이 통과되자 경영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현재 자본 2조원 이상 상장사 226개 가운데 여성 이사가 없는 184개(81.4%)사다. 이들은 바뀐 개정안에 따라 2022년 7월까지 이사진을 바꿔야 한다. 박한성 상장사협의회 선임연구원 “기업과 주주의 권한을 법으로 훼손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사외이사 임기 6년 제한’ 강행 조치와 맞물려 ‘이사 선임 대란’이 불보듯 뻔하다”고 비판했다.

한 대기업의 임원은 “자본 2조원을 갓 넘은 중견 업체들이 더 힘들 것”이라며 “전문성 갖춘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것도 힘든데, 거기에 여성을 특정하는 건 고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아직도 의무조항을 넣은 수정안이 통과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법사위 의원이 많다”며 “다수당의 의회 폭거”라고 했다.

“해외 의무도입 사례 적지 않아”

기업 경영에 긍정적일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지난해 국내 대기업 이사회 여성 비율은 3.1%(크레디트 스위스)로, 조사 대상 40개국 중 ‘꼴찌’였다. 이 법안을 최초로 발의한 최 의원은 “성 다양성이 기업 경영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며 “다른 시각과 경험을 갖춘 여성들이 이사회에 진출하면 기업 경쟁력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여성 임원 할당 등이 보편화했다는 주장도 있다. 노르웨이는 이사회 인원이 9명 이상인 경우는 남녀 각각 40% 이상의 이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기면 상장폐지까지 가능하다. 독일은 근로자 수 2000명 이상인 상장회사(약 110여곳)는 감독이사회(사외이사 격) 구성원의 30% 이상을 여성한테 할당하도록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캘리포니아에 주된 사무실을 둔 상장사는 올해 말까지 여성 이사를 최소 1명 이상 뽑도록 했다. 내년 말까지는 이사회 규모가 6명 이상인 경우 3명의 여성 이사를 둬야 한다. 위반시 벌금 등 처벌조항도 있다. 법안 발의부터 참여한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회장은 “기업의 의사결정 영역에서 여성참여가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다양한 여성이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업과 여성을 연계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우섭/장창민/전범진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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