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소니가 자율주행 전기차를 전격 공개했다. 모바일 혁명 10년에서 뒤처졌던 일본 전자업계가 앞으로 전개될 모빌리티(이동성) 10년에서 분투할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 나온다. 시스템(비메모리)반도체 업체와 5세대(5G) 이동통신 업체들도 자율주행을 향해 뛰고 있다.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준비한 자율주행 기업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시장이 밝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자율주행차를 향한 엄청난 경쟁의 서막이 시작되고 있다. 이 생태계에 참여하지 못한 기업의 미래는 절벽이라 할 만하다. ‘죽음의 계곡’을 누가 어떻게 넘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소니, 이미지센서로 승부
소니가 지난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자율주행 전기차를 공개한 과정은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소니가 자랑하는 로봇 아이보 개발팀이 2년간 소리소문없이 작업해 이날 내놓은 것이다. 전자 업체 소니가 자동차 부문에 뛰어든 건 깜짝 놀랄 일이다. 이날 선보인 자율주행차는 ‘워크맨의 소니’가 만든 만큼 디자인이 깔끔하고 세련됐다. 360도 전방위에서 흘러나오는 입체 음향 시스템도 그렇고 일반 자동차보다 3~4배 많은 33개의 이미지 센서와 레이저 빛은 ‘소니다움’이 듬뿍 묻어났다. 하지만 소니 차를 보는 시각은 일본 내에서도 엇갈린다. 놀랄 만한 일이라고 감탄하는 이들도 있지만 기술이 아직 부족한 자동차이며 소니의 자율주행차 진출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고 치부하기도 한다.
엄청난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은 파괴적 혁신에 무게를 둔다. 소니는 설계와 디자인을 제외하고는 외주를 주는 형식을 택했다. 차체는 캐나다의 마그나인터내셔널에 위탁했고 차 부품은 독일 보쉬와 콘티넨탈의 제품을 썼다. 핵심 반도체는 엔비디아와 퀄컴 제품이었다. 이들을 조립하는 특별한 공장 라인도 필요하지 않았다. 일본 기업들이 오랜 전통으로 여겨왔던, 현장에서 부품을 맞추는 현장 맞춤형 제조 형태(아키텍처형)를 과감하게 버리고 그저 부품 모듈과 모듈을 연결하고 조합하는 형태(모듈형)로 차를 제작했다. 델이 PC(개인용컴퓨터)를 만들고 애플이 아이폰을 제조할 때와 같은 형태다. 이런 방식은 내연기관 위주였던 자동차업계에선 쉽게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소니는 전기차에서 과감하게 설계와 제작을 분리하는 실험에 도전했다.
이런 제조 방식은 소니가 처음이 아니다. 2018년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전기차 기업 니오(Nio)도 자동차 설계만 담당하고 제조는 JAC모터에 맡겼다. 이스라엘의 칩업체 모빌아이가 핵심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등 160개 부품 업체에서 1700개의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하고 있다. 수직계열화가 아닌 아웃소싱 위주의 수평분업 형태다. 니오는 전기차를 시판한 지 불과 4년 만에 중국에서 손꼽히는 전기차 업체로 등극했다.
소니는 더구나 일본 기업에서 부품을 일부러 공급받지 않았다. 글로벌 공급망과 직접 연결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초연결되는 시대에는 서로 맞추고 조정하는 형태보다 오히려 표준화된 모듈을 짜 맞추는 기능이 각광받는다.
수평 분업 형태도 활발
소니의 움직임에서 읽히는 건 기업의 절박감이다. 전자 업체가 자동차 업종에 진출하는 데엔 엄청난 결단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자율주행 생태계에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면 디지털 경쟁에서 뒤처지고 극단적으로 기업의 생존과 연결된다는 위기감이 읽힌다. 소니는 초기 디지털 생태계 참여를 등한시한 걸 지금도 여한으로 생각한다. 당장은 자동차 제작에 관심이 없다지만 여차하면 도요타 자동차와 한판 붙을 각오도 돼 있다. 요시다 겐이치 소니 사장은 “안전한 자율주행차는 내부가 엔터테인먼트 공간이나 비즈니스 공간이 돼야 한다. (소니는) 이를 검증받고 싶다”며 CES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그들의 핵심 역량을 분명하게 내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절치부심하고 와신상담한 흔적이 곳곳에 숨어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당장 치열한 생태계는 자율주행차다. 디지털로 무장한 반도체와 통신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이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고 관련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갈수록 시장이 커지고 있는 반도체에서도 엿보인다.
통신 반도체의 패자 퀄컴은 이번 CES에서 자동브레이크와 고속도로 자율주행 자동차용 반도체를 발표했다. 그동안 엔비디아와 인텔이 인수한 모빌아이, 화웨이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시장이었다. 퀄컴만이 아니다. 중국 알리바바도 인공지능(AI) 및 자율주행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래픽 화상처리로 자율주행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한 엔비디아는 브레이크 반도체 개발 등에 힘을 쏟고 있다. 컴퓨터에 두뇌 역할을 하는 CPU가 있듯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건 핵심 반도체다. 그만큼 부가가치가 크다. 일반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한다면 시스템반도체는 그야말로 ‘디지털의 쌀’이다.
'디지털 쌀' 비메모리 반도체 전쟁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는 이런 칩을 직접 개발하려고 한다. 수많은 반도체 설계자를 고용하고 전용칩 설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반도체 전문 업체에 맡기면 빠른 환경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게 이유다. 결국 스스로 반도체 개발에 나선 것이다. 이런 반도체는 전력 소비가 워낙 많다. 전용칩으로 하면 이것도 줄일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자율주행차에 없어서는 안 될 5G 통신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업체들의 전쟁도 치열하다. 5G의 가장 큰 시장이 자율주행차이기도 하다. 중국은 국가가 나서서 안정된 주파수를 공급하고 있다. 업체들은 시장 개척을 위해 기술 개발과 솔루션 제공, 서비스 개발 등에 적극적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미국의 망설계 전문 기업 텔레월드를 인수한 것도 솔루션을 확보하고 서비스를 넓히려는 차원이다. 콘텐츠 개발도 자율주행차 개발에 있어 또 하나의 도전이다. 소니는 CES에서 콘텐츠 기업으로서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후문이다.
치명적 사고 날까 상용화 조심
센서 반도체 5G 디지털엔터테인먼트 등 자율주행차 생태계에 끼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율주행차가 모든 걸 안고 가는 시스템이다. 정작 자율주행차는 쉽게 시장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세계 최초로 지난해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려 했지만 아직 시장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우디 포드 등도 감감무소식이다. 현대자동차 혼다 등이 올해 가을에 조건부 자율주행에 해당하는 레벨3 차를 선보인다고 했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선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의 이익이 없다. 선두 주자로 나섰지만 치명적인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다. 자동운전 기술을 사회에서 용인하는지가 과제가 되고 있다. 차츰 자율주행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올해가 자율주행의 기점이 될 것이라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시장에서 누가 리더가 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그속에서 생태계의 역동성은 갈수록 커진다. 일부에선 한국 기업이 말로만 떠든다는 지적도 있다.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자율주행 생태계에서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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