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보도는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공기업 등 공공기관 개혁의 최우선 현안 가운데 하나인 직무급 임금제도 도입에 노사가 원만하게 합의한 게 돋보인다. 업무의 난이도나 특성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이 제도가 속히 전체 공공기관에 두루 적용돼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임금의 유연성’이라도 정착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지난해 7월 한국석유관리원이 처음 직무급제를 시행한 이래 공공부문에서는 KOTRA가 다섯 번째다. 정부 감독하에 있는 339개 공공기관 전체로 보면 도입 속도는 여전히 많이 느리다. 더구나 이 제도가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고, 정부도 여러 차례 도입을 장담했던 사실을 돌아보면 다른 대형 공기업들과 관련 부처들은 지난 2년8개월 동안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전 정부 때의 성과급제를 폐지하는 대신으로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을 덜커덕 해놓고 막상 노동조합이 이 제도까지 반대하자 그 벽을 깨지 못하는 현실이 딱하다.
KOTRA가 50년 이상 된 호봉제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젊은 직원들이 직무급에 더 우호적이었다는 사실이다. 34세 이하 국내 근로자의 임금수준과 생산성을 1로 볼 때 55세 이상의 평균 임금은 3.02인 데 비해 생산성은 0.6에 그친다는 연구 분석이 있다. 근속연수 일변도의 호봉제가 안고 있는 본질적 문제점을 젊은 세대가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직무급제의 조기 시행이 중요한 것은 이 제도가 유연성이라고는 없는 한국의 고용·노동시장을 선진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현실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고용도, 임금도 본질적으로는 당사자들 스스로가 정할 사적 자치의 영역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최저임금 산정부터 60세로 명시된 정년 규정까지 과도한 ‘고용의 법제화’로 고용주 권한이 극히 제한적이다. 가뜩이나 ‘언더도그마 현상’이 만연돼 온 터에 현 정부 들어서는 행정·입법·사법에 걸쳐 친(親)노조 기류가 현저하다. 고용의 유연성이 ‘쉬운 해고’라는 왜곡된 구호로 통하는 게 노조 주장 때문만이 아니라 정부와 국회까지 여기에 동조해온 탓이 크다.
고용의 유연성에 다가가는 전 단계로 임금의 유연성이라도 조금씩 확보해나가야 한다. 직무 내용과 성과에 따른 임금제도는 고령사회 준비차원에서도 더 미루기 어렵다. 그래야 고령자에게 일자리가 주어지면서 폭증하는 복지예산 수요도 줄일 수 있다.
이웃 일본은 벌써 ‘정년 70세’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4월부터 희망자에 대해서는 70세까지 일할 수 있게 기업 차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인데, 정부는 세제혜택 규제완화 등으로 제도 정착을 유도할 것이라고 한다. 정년은 어떻게든 60세를 보장하고, 임금은 생산성과 상관없는 호봉제를 유지한다면 일본 같은 미래 준비는 꿈도 못 꾼다. 나랏빚은 한껏 늘리고, 호봉제로 노동기득권자들 주머니까지 계속 채우면 미래세대에 미안하지 않겠는가. 노조세력도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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