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총파업 속에서도 연금 개혁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프랑스 국철 노조가 역대 최장인 36일간 파업을 이어가는 등 노동계 반발이 거세지만, 그는 “연금 개혁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9일(현지시간) 프랑스 수도 파리와 마르세유, 낭트, 툴루즈 등에서는 정부의 퇴직연금 개편에 반대하는 제4차 총파업 대회가 열렸다.
국철과 지하철 노조의 파업으로 프랑스 전역의 철도와 파리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 운행이 큰 차질을 빚었다. 교사들도 파업에 동참해 많은 학교가 문을 닫았고, 파리의 관광명소인 에펠탑도 운영되지 못했다.
프랑스 국철 노조의 파업은 과거 최장 기록인 1968년 총파업 기간(28일간)을 이미 넘어섰다. 르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은 “1968년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당시 샤를 드골 정부의 실정에 저항한 ‘68운동(5월 혁명)’ 이후 50여 년 만에 최대 규모의 파업”이라고 전했다.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편안은 현재 직종·직능별로 42개에 달하는 퇴직연금을 단일 체제로 통일하는 게 핵심이다. 프랑스 퇴직연금은 기업·직종별로 연금 수령 시기와 액수가 천차만별이다. 복잡한 제도 탓에 ‘덜 내고 더 받는’ 사각지대가 생기면서 연간 100억유로(약 13조2400억원)에 이르는 적자가 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연금개혁에 실패하면 2025년에는 관련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0.7%인 170억유로로 불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마크롱 정부는 복잡한 연금 체제를 하나로 합치고, 연금 납입액만큼 ‘포인트’를 적립해 나중에 연금으로 전환하겠다는 복안이다. 예컨대 연금 납입액 10유로당 1포인트를 받고, 1포인트는 연 0.55유로의 연금으로 전환되는 방식이다. 연금 수급 연령은 기존 62세에서 64세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노동계는 이 같은 정부 구상에 대해 “더 오래 일하게 하고 연금은 덜 주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파업을 주도하는 프랑스 노동총연맹(CGT)은 연금 개편안을 폐기하라고 압박했다. 프랑스 최대 노조인 민주노동연맹(CFDT)의 로랑 버거 대표는 “현재의 연금 체제를 고칠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정년을 64세로 늘리려는 시도는 공정하지도 않고 쓸모도 없다”고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개편을 밀어붙이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앞서 신년사를 통해 “연금 개편안에 대한 우려를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책 없이 바라만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금 개혁을 포기하면 시스템에서 버려진 이들과 젊은이가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라며 “정부와 노조가 신속하게 협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노동계의 총파업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지급하는 특별 연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대통령이 퇴임 후 자동으로 자격을 얻는 헌법재판소 위원직도 포기하기로 했다.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은 “대통령이 모범을 보이고 제도 개편의 일관성을 위해 이렇게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이후 공기업 개혁, 실업보험 개편 등 다양한 노동 개혁정책을 연이어 내놨다. 이 덕분에 프랑스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실업률은 8.5%로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마크롱 대통령 취임 당시 23%를 웃돌던 청년실업률도 지난해 말에는 19%대로 낮아졌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곧 노동계 대표들과 만나 연금 개편안을 다시 논의한다. 하지만 파업 사태의 출구를 쉽게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양측은 지난 7일에도 프랑스 노동부에서 만나 연금 개편안을 논의했지만 견해차만 확인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