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해 국채 발행으로 70조9000억원(순증액 기준)을 조달한다. 지난해 44조5000억원보다 59.3% 늘어난 규모다.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큰 폭 증가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월요일인 지난 6일 입찰에서 국채 3년물 2조2000억원, 7일 30년물 2조7000억원어치를 다 팔았다. 지난해 12월 한 달 발행액(4조890억원)보다 많은 돈을 이틀 만에 끌어모았다.
지금은 돈을 끌어다 쓰기에 좋은 환경이다. 시중에 돈이 넘쳐난다. 경기가 나쁘다 보니 회사채 발행도 많지 않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위기로 안전자산인 국채에 돈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건들은 어느 순간 바뀔 수 있다. 나쁜 것들도 함께 다니는 것이 금융시장의 속성이다.
문제의 근원은 올해부터 국가 재정이 대규모 적자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확정된 올해 정부예산은 71조5000억원 적자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에서 적립하는 돈을 다 끌어모아도 30조5000억원 적자(통합재정수지 기준)다. 경제위기가 아닌 평상시에 대규모 재정적자를 내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내년에도 통합재정수지 기준으로 41조3000억원, 2022년 46조1000억원, 2023년 49조6000억원의 적자를 내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정부는 작년 37.2%였던 국가채무비율을 40%대 중반 수준까지 끌어올린 뒤 거기서 멈추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한번 늘려놓은 재정 지출은 줄이기 어렵다.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 때문이다. 2010년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 정부가 복지 지출을 줄이자 대규모 유혈시위 사태가 벌어졌다. 재정 지출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인구 구조도 바뀐다. 6·25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고령층에 접어든다. 올해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지난해보다 20만 명 이상 줄어든다. 복지 관련 지출은 자동으로 늘어나게 돼 있다.
공무원과 군인연금 지급 부담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지난해 공무원연금은 2조2000억원, 군인연금은 1조6000억원 적자였다. 앞으로 지급해야 할 공무원 및 군인연금 부채는 2018년 말 기준으로 조사했을 때 939조9000억원이었다. 한 해 전에 비해 126조9000억원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금충당부채는 1100조원을 넘어설 공산이 크다.
재정파탄 우려가 커지면 원화 가치가 한순간에 급락(환율 급등)하고 물가도 폭등한다. 물가에 연동해 연금을 지급하는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부담도 덩달아 급증한다. 가계대출 등 잠재적인 위험 요인들도 함께 터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모든 국민이 큰 타격을 받는다.
정부 관계자들은 지난 6, 7일 국채 발행 성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1월 말까지 10조4000억원 규모의 국채 발행을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엄청난 적자국채 발행으로 자금시장이 충격을 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재정위기 신호탄이 터졌는데 시중의 과잉유동성과 국제사회 불안에 가려졌을 뿐이다.
아니, 지난해 8월에 이미 터졌는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대규모 적자예산 편성 계획을 내놨을 때다. 그때부터 채권값은 급락(채권금리 급등)했고 서울 등 인기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급등세를 탔다. 채권시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부동산시장으로 다 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보면 정부 재정에 대한 신뢰 상실을 걱정하는 투자자들의 ‘자금 이동’ 첫 파동이 그때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 발 빠른 사람들은 언제나 있고, 정부만 믿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은 종종 당한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보편적 복지 확대에 매우 적극적이다. 반면 국민의 재산을 지키거나 늘리는 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막대한 재정적자가 국가 경제 전반에 초래할 위험에도 신경쓰지 않는다. 가계부채 급증을 우려하는 정부가 자기 자신의 빚이 늘어나는 데 무감각해진 것이다. 그래서 2020년은 국가재정 파탄 위기로 치닫는 원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때일수록 국민 개개인이 자기 재산을 지키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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