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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엔 가성비 甲 '미쉐린 요리', 루프톱 바에선 야경 보며 칵테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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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33%, 기독교 18%, 이슬람교 15%, 도교 11%, 힌두교 5%. 서울(약 605㎢)보다 조금 큰 면적(약 719㎢)의 도시국가 싱가포르 국민의 종교 비율이다. 550여만 명의 인구가 이처럼 다양한 종교를 믿을 수 있는 한 공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메리카·오세아니아 등 신대륙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아시아에서는 더 그렇다. ‘청결함’과 ‘엄격한 법 집행’이 이 도시국가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싱가포르는 거리 한쪽에서는 모스크를, 한쪽에선 차이나타운과 ‘리틀인디아’를 볼 수 있는 문화의 용광로다. 한 도시에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며 다채로운 먹거리를 맛보고 싶은 여행객이라면 싱가포르를 필수 여행지로 눈여겨봐야 한다. 도심의 붉은 조명에 흔들리는 바다 물결을 안주 삼아 마시는 칵테일의 맛은 싱가포르에 온 관광객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중국·말레이 식문화가 결합한 ‘페라나칸’ 요리

‘페라나칸(Peranakan)’식 요리는 여러 문화를 버무린 샐러드 같은 싱가포르의 문화적 배경을 잘 드러낸다. 페라나칸은 말레이반도로 이주해온 중국인과 말레이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후손을 가리킨다. 15세기부터 말레이반도로 유입된 중국인의 식문화에 말레이 반도의 식자재가 섞이면서 중국 본토와는 다른 개성을 지닌 페라나칸 특유의 요리들이 등장했다.

미쉐린에서 별 1개를 받은 캔들넛(Candlenut)은 정갈하고 차분한 실내 환경에서 페라나칸 요리를 선보이는 대표적인 레스토랑이다. 웍을 사용한 중국식 조리법에 레몬그라스, 코코넛 등 열대 지방 특유의 식재료를 섞어내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맛을 잘 살린 요리가 많다. 건새우를 발효해 만든 양념인 벨라찬, 고추 생강 마늘 등을 으깨 만든 양념 렘파는 한국의 고추장처럼 페라나칸 요리에서 빠지지 않는 싱가포르의 ‘국민 양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 식당이 선보이는 삼발소통은 벨라찬으로 간을 한 오징어 요리다. 중국 요리에서 맛볼 수 있는 매콤하고 달달한 소스에 싱그러운 체리향이 섞이면서 다채로운 맛이 한데 어우러졌다. 부아켈루아도 여러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싱가포르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블랙 넛과 다양한 향신료로 양념한 돼지고기가 입안에 들어가 사르르 녹는 건 오향장육을 맛볼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알싸한 감칠맛이 입안을 감돌 땐 중화 요리에서 맛볼 수 없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페라나칸 요리만의 다채로움을 입으로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이다.

마리나베이샌즈 쇼핑몰에서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멀라이언상’이 우뚝 서 있는 강가를 마주보고 있는 레스토랑 저스트인(JustIN)은 아시아 요리에 서양식의 조리법을 가미한 퓨전 요리를 내놓는다. 이 음식점의 새우국수는 매콤한 맛이 나면서도 향이 지나치지 않아 균형 잡힌 깔끔한 맛을 낸다. 영어라는 언어 아래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싱가포르와 닮아 있다. 꼬치요리인 ‘사테’는 향신료를 입힌 양고기·닭고기·소고기 등의 꼬치구이를 땅콩 소스에 담가 먹는 음식으로 싱가포르산 맥주인 ‘타이거’와 함께 먹기 좋다.

길거리에서도 맛볼 수 있는 미쉐린 음식

경치 좋은 레스토랑에서만 싱가포르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거리에 모여 있는 음식점인 ‘호커센터’에서도 다양한 문화를 한데 섞은 싱가포르 미식을 체험할 수 있다. 호커센터는 한국의 푸드코트처럼 다양한 음식점이 한데 모여 같은 자리에서 식탁을 공유하며 영업하는 상점들을 일컫는다. 말레이 요리 식당만이 아니라 중국 광둥성·푸젠성 계열의 요리 식당도 한곳에 모여 싱가포르 시민들의 일상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싱가포르 시내 곳곳에 있는 호커센터를 방문해 여러 식당에서 맘에 드는 음식만 골라 주문하면 싱가포르 국민 먹거리를 한데 맛볼 수 있는 작업을 끝낸 셈이다.

뉴튼푸드센터(Newton Food Centre)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호커센터 중 하나다. 이미 한국인 관광객에게도 입소문이 나 한국어로 쓰인 간판과 메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8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이 6만4500달러에 달하는 싱가포르지만 이 호커센터에선 5000~8000원 내외 가격이면 부담 없이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파는 ‘호키엔 미(Hokkien mee)’는 쌀 또는 달걀로 반죽한 면을 돼지고기, 새우, 오징어, 숙주 등과 함께 웍으로 볶은 음식이다. 맑은 새우 육수에 벨라찬을 곁들인 칠리소스를 발라 먹으면 해산물의 싱그러움 속에 느끼함을 잡아주는 매콤함을 같이 맛볼 수 있다.

5000원 남짓한 비용으로 미쉐린 별이 달린 음식을 맛보는 체험도 가능한 곳이 싱가포르다. 차이나타운 초입에 있는 ‘호커찬(Hawker Chan)’은 본래 차이나타운의 야외 노점식당이었지만 2016년 미쉐린 심사위원에게서 별을 받은 뒤로 싱가포르 전역 곳곳에 분점을 냈다.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인 ‘소야소스 치킨 라이스’는 5싱가포르달러(약 4300원), ‘소야소스 치킨누들’은 6싱가포르(약 5200원)에 판매된다. 쌀밥 또는 중국식으로 삶은 뒤 데친 면에 간장 계열의 소스를 입혀 통으로 구운 닭다리와 닭가슴살을 함께 내놓는 요리다. 닭고기의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은 중국 요리인 베이징덕과 비슷한 풍미를 낸다.

해양도시의 야경을 만끽하며 칵테일 한잔

낮엔 동남아시아·중국·유럽 문화가 섞인 다채로운 먹거리를 맛봤다면 밤엔 아시아 최대 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산업 국가로 떠오른 싱가포르의 밤문화를 체험할 차례다. 싱가포르는 항공 시간 7시간 안에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33억 인구에 접근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와 영어권 국가라는 강점을 활용해 비즈니스 여행과 MICE산업을 결합한 ‘BTMICE(Business Travel+MICE)’ 산업을 개척하고 있다. 싱가포르엔 1920년대 뉴욕 바(bar) 콘셉트의 ‘맨해튼’, 250종 샴페인과 100여 종의 진을 보유한 ‘아틀라스’, 세계 100대 클럽으로 꼽힌 ‘주크’ 등 다양한 콘셉트의 바가 자리잡아 사업차 방문한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마리나베이샌즈의 루프톱바인 ‘세라비(CeLaVi)’는 싱가포르의 야경을 보며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싱가포르의 ‘핫플레이스’다. 20싱가포르달러로 시작하는 칵테일 가격이면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로 거듭난 마리나베이샌즈의 루프톱 수영장을 옆에 두고 해양도시의 야경을 만끽할 수 있다. 호텔 숙박객에게만 개방된 루프톱 수영장과 달리 이곳은 칵테일 값으로 20싱가포르달러가량의 예치금을 미리 내기만 하면 숙박객이 아닌 관광객도 올라가 이용할 수 있다. 단 싱가포르에서 손꼽히는 명소인 만큼 주말 저녁처럼 인파가 몰리는 시간에는 루프톱바에 올라가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며 술을 음미하고 싶다면 ‘NCO클럽(The NCO Club)’을 방문해도 좋다. 영국군 장교들의 사교 장소로 쓰였던 이 지상 3층 규모 건물은 오늘날 고급 레스토랑과 바가 들어선 ‘나이트라이프’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바와 유리창을 맞댄 맞은편 수영장에선 인어 복장을 한 직원들이 수상 공연을 선보여 술을 마시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체리브랜디와 레몬 주스, 진, 소다수를 섞어 만든 ‘싱가포르 슬링’은 싱가포르 바에 왔다면 맛봐야 할 칵테일이다.

도심에선 케이블카 관람, 공항인공폭포 공연

싱가포르 케이블카를 탑승하는 건 싱가포르의 경치 곳곳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싱가포르 본섬에 있는 마운트페이버공원에서 센토사섬으로 이어진 케이블카를 타면 싱가포르 남쪽 지구의 전망은 물론 유니버설스튜디오, 리조트월드센토사 등의 전망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다. 도심 곳곳에 조성된 녹지와 자연 그대로 보존된 정글, 리조트와 항만의 도회적인 풍경이 바다를 배경 삼아 어우러진 모습은 싱가포르만이 선보일 수 있는 미경이다.


출국을 기다리는 공항에서도 싱가포르의 볼거리는 끝나지 않는다. 지난해 문을 연 창이국제공항 내 복합쇼핑몰 주얼창이공항은 복합쇼핑몰과 함께 실내정원 시설을 갖추고 있다. 시설 한가운데에 있는 정원에는 높이 40m의 세계 최대 규모 실내 인공폭포인 ‘레인볼텍스(Rain Vortex)’가 있다. 매일 밤마다 한 시간 주기로 하는 ‘라이트&사운드쇼’는 음악과 함께 인공폭포에 조명을 투사해 펼쳐지는 ‘음악폭포’ 공연이다. 흔들리는 물결에 화려한 레이저 조명이 일렁이는 장관을 감상하다 보면 출국을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비즈니스 관광의 일부로 느껴진다.

싱가포르 특유의 미식 문화를 이곳 공항에서도 맛볼 수 있다. 레스토랑 점보시푸드(Jumbo Seafood)에 방문하면 싱가포르의 대표 요리로 손꼽히는 ‘칠리크랩’을 맛볼 수 있다. 칠리소스와 토마토 소스를 섞어 만든 수프에 게를 볶아 만든 요리인 칠리크랩을 맛봤다면 양념장을 구매해 캐리어에 넣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오리알 노른자로 옷을 입힌 새우튀김도 이 레스토랑이 자랑하는 별미다. 짭조름한 맛에 고소함이 어우러진 새우를 한입 베어 물면 항공 수속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입국부터 출국까지 다양한 문화를 한 도시에서 체험할 수 있는 곳, 그곳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글·사진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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