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국가채무비율은 국내총생산(GDP)대비 40%를 넘지 않습니다. OECD 평균 110%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수준이고, 재정 건전성 면에서 최상위 수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2일 국회에서 한 '예산안 시정연설'의 일부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확장적 재정정책'을 밀어붙여 왔지요. 나라 곳간을 풀어 글로벌 경기침체와 저출산·고령화 등 구조적 저성장을 돌파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돈을 더 풀기 위해서는 나라빚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의 한 해 수입(세금)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OECD 평균보다 국가채무비율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사실일까요. 박형수 전 조세재정연구원장이 국가미래연구원에 기고한 팩트체크 결과를 소개합니다.
◆OECD 평균치보다 국가채무비율 훨씬 낮다? … 단순 비교 어려워
지난 10일 512조3000억원 규모의 '2020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확정된 예산에 따르면 2020년말 국가채무는 805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39.8%에 이를 전망입니다.
박 전 원장은 "OECD 국가채무비율 평균이 110%"라는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OECD 평균 110%는 국가별 GDP로 가중평균을 낸 수치입니다. 이 평균치에는 GDP가 높은 나라일수록 국가채무비율이 높게 반영됩니다. GDP 규모가 큰 미국의 국가채무비율(111.9%)과 일본의 국가채무비율(225.2%) 때문에 단순 평균치(79.7%)보다 과대평가됐다는 거지요.
여기에 더해 한국은 국제 비교에 쓰이는 일반정부 부채(D2) 통계로 계산되지 않는 비금융공기업의 부채 규모가 GDP 대비 22%(2017년말 기준)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고 있는 7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두 번째로 높은 일본은 17%, 세 번째로 높은 멕시코는 10% 수준입니다. 따라서 단순 숫자로만 보면 문 대통령의 발언이 맞습니다. 다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제로 정부와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할 빚은 그보다 훨씬 높다는 얘기입니다.
◆채무비율 낮다고 건전성에 문제 없다?…"급격한 증가속도가 문제"
문 대통령 말대로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낮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박 전 원장은 "최근 들어 한국의 국가채무비율만 급격히 늘어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 세계 최상위 수준"이라는 말은 논란의 여지가 큽니다.
OECD 국가의 평균 국가채무비율은 2014년부터 계속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2021년말에는 79.3%까지 낮아질 전망이지요. 반면 한국의 국가채무는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D1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2000년말 국가채무비율은 17.5%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2015년 35.7%로 15년 만에 두 배로 뛰었지요. 이후 2018년까지 35.9%로 잠시 안정됐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다시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고, 2023년말에는 46.4%에 달할 전망입니다.
정부는 매년 향후 5년간의 국가 재정 운용 계획을 수립해 발표합니다. 일반적으로 "앞으로 국가채무를 더 낮추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돼 있지요. 2004~2012년 기획재정부가 수립한 계획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2017년부터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2017~2018년 정부는 4~5년 뒤 국가채무비율이 다소 상승하는 쪽으로 계획을 짰습니다. 올해 발표한 2019년 계획에서는 계획기간 후반으로 갈수록 국가채무비율이 급격히 상승하도록 돼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계획을 따로 내놓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예컨대 외환위기 때는 정부가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10년간(1997년~2006년) 국가채무비율이 약 20%p 급증했습니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2002년 국회 심의를 거쳐 공적자금 상환대책을 마련했고, 이를 통해 올해까지 나랏빚 20조원을 갚았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됐지만 이를 회복하기 위해 2010년 총지출 증가율을 2.9%로 억제하는 등 강력한 지출 통제 정책을 펼쳤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향후 5년간 국가채무비율이 10.5%p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데도 정부는 딱히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특별한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게 먼저"라는 게 박 원장의 결론입니다. 꼭 필요하다면 돈을 써야 하겠지만, 재정건전성을 향후 회복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겁니다. 당장 빚을 낸 덕분에 지금 세대의 씀씀이가 늘어나더라도 누군가는 그 빚을 갚아야 하고, 그 부담을 지는 건 우리의 미래 세대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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