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빌딩의 유리 세 장 정도는 내 거라고 봐야지.”
농담처럼 하던 말이 내년부터 실제로 가능해진다. 국내에 없던 부동산 유동화 증권 거래 플랫폼이 첫선을 보이기 때문이다. 일반 투자자도 특정 건물의 지분을 주식처럼 소액으로 거래할 수 있게 된다. 건물주들은 빌딩을 상장해 현금을 융통하거나 건물 가치를 높이는 일이 가능해진다. 고강도 규제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투자 플랫폼으로 정착될지 주목된다.
부동산 거래소 문 연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 2월 핀테크(금융기술) 업체 카사코리아 컨소시엄의 부동산 유동화 증권 거래소가 문을 연다. 지난 19일 금융위원회가 이 회사의 부동산 유동화 유통 플랫폼을 혁신금융서비스(금융규제 샌드박스)로 지정한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자본시장법에 따라 부동산을 기반으로 한 증권은 발행할 수가 없었다. 금융위가 이 사업을 샌드박스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관련 규제를 한시적으로 적용받지 않게 됐다. 사업 컨소시엄에는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신한금융투자, 한국토지신탁, 한국자산신탁, 코람코자산신탁이 뛰어들었다.
핀테크 업체 루센트블록도 비슷한 형태의 부동산 수익증권 거래 플랫폼 사업을 최근 샌드박스 대상으로 신청했다. 컨소시엄에는 신영부동산신탁, 생보신탁, 무궁화신탁, 하나자산신탁, 한투부동산신탁, 경남은행, 대구은행이 참여했다. 금융위가 이 사업을 통과시키면 내년에만 복수의 거래소가 출범할 수 있게 된다.
리츠보다 소액으로 투자 가능
‘부동산 거래소’는 ‘부동산 유동화 수익증권(DABS)’을 거래하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상장을 원하는 건물주는 감정평가법인에서 건물 가격 감정을 받은 뒤 거래소에 상장을 신청한다. 건물의 소유권은 부동산 신탁회사로 넘어가게 된다. 산정된 건물 가격을 바탕으로 은행과 신탁회사는 수익증권을 발행한다. 카사코리아 컨소시엄을 예로 들면 신한금융투자는 유동화 수익증권을 전자증서 형태로 만들어주고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계좌 개설을 지원한다.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은 DABS를 발행·인수한다. 나머지 신탁사들은 플랫폼에 상장된 건물을 신탁 재산처럼 운영하고 수익증권을 발행한다.
이후 거래소가 이 증권을 상장하면 일반 소비자들은 이를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게 된다. 건물 지분 일부를 소유하게 되는 만큼 배당 수익도 받을 수 있다. 임대료 또는 건물 매각 시세 차익에 따른 금액이 배당된다. 루센트블록 관계자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던 상업용 부동산을 소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거래 안전성도 높였다”고 설명했다. 모든 거래 과정은 거래소와 은행에 공동으로 기록된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대표적인 부동산 간접 투자 상품인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와도 다르다. 리츠는 특정 회사가 대표로 투자를 받은 뒤 여러 건물에 나눠 투자한다. 투자자들은 개별 건물이 아니라 이 회사에 투자한다. 반면 부동산 거래소는 투자자가 직접 원하는 건물을 고를 수 있다. 앱(응용프로그램)에서 상장한 건물을 보고 투자 가치를 판단해 지분을 사고팔면 된다. 5000원 단위의 소액 투자도 가능하다. 카사코리아 관계자는 “투자자가 상장된 개별 건물 가치를 직접 판단해 투자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리츠보다 더 소액으로도 건물에 투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새 바람 될까
부동산거래소는 상업용 부동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카사코리아는 서울 강남 지역의 유명 오피스빌딩을 중심으로 상장 물건을 모색할 계획이다. 대전에 본사를 둔 루센트블록은 지역의 유명 건물이나 프로젝트성 부동산 등을 타깃으로 삼을 예정이다. 거래를 통한 투자자 평균 수익률은 연 5% 안팎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식시장 횡보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 역시 규제로 관망세로 들어서면서 대안 투자 플랫폼에 대한 수요가 크다”며 “시세 조종이나 해킹 가능성 문제를 사전에 잘 차단한다면 일반 투자자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소람/송영찬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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