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업계가 ‘반짝 특수’를 누리고 있다. 아시아 최대 마이스 국가로 꼽히는 홍콩의 시위 사태 장기화의 반사효과 덕분이다. 2017년 중국과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갈등을 시작으로 올해 반일감정 고조 등 잇단 악재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마이스업계에선 “모처럼 시장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온다.
26일 마이스업계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전시실 및 회의장 예약이 전년 대비 10~20%가량 늘었다.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파르나스호텔은 예약이 50%가량 급증했다. 도심 주요 특급호텔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연말연초 호텔 객실은 물론 중소 규모 회의나 콘퍼런스 개최가 가능한 연회장 예약이 예전 수준을 뛰어넘었다.
강도용 레드캡마이스 본부장은 “내년 도쿄올림픽 개최로 한·일 연계 관광 수요까지 겹치면서 예약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며 “행사 주최 측에 제공하던 ‘통상적 할인’도 사라졌다”고 전했다.
전효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산업연구실장은 “세계를 강타한 한류열풍에 항공 노선과 중저가 호텔이 늘면서 한국의 마이스 경쟁력이 대폭 개선됐다”며 “여기에 홍콩 사태가 가속도를 붙인 격”이라고 분석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한국서 기업회의·포상관광…서울 호텔 예약↑
마이스업계 때 아닌 특수
지난 20일 중국의 한 제약회사는 직원 한 명을 한국에 급파했다. 내년 3월 홍콩에서 열기로 한 1000명 규모의 단체행사 장소를 한국으로 급히 바꾸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홍콩 시위 사태가 해를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등 안전문제가 해소되지 않자 한국행을 전격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응수 한국마이스협회 회장은 “최근 중국 마이스위원회 관계자로부터 한국에서 행사를 열기로 계획을 바꾸는 중국 기업들을 적극 도와달라는 요청을 잇달아 받았다”며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베트남 등 다른 동남아시아 쪽 기업들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도심 대형 호텔 회의실 예약률 쑥
한국이 홍콩 시위 사태로 인한 대체 행사 개최지로 ‘몸값’이 치솟고 있다. 홍콩은 마이스(MICE)산업이 전체 관광산업의 15%를 차지하는 아시아 최대 마이스 국가다. 하지만 지난 6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로 시작된 시위가 장기화하자 이 수요가 한국으로 급속히 흘러들고 있다. ‘반짝특수’ 효과는 서울 시내 주요 특급호텔 예약률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과 그랜드인터컨티넨탈파르나스호텔은 내년 상반기 연회장 예약이 올해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광화문 더플라자호텔도 같은 기간 예약이 매출 기준 20%가량 치솟았다.
짝수 해는 격년 행사가 몰려 예약 수요가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2020년은 이를 감안해도 증가폭이 크다는 게 호텔 업계의 설명이다. 인터컨티넨탈호텔 관계자는 “규정상 특정 기업이 홍콩에서 한국으로 장소를 변경했다고 밝히기는 어렵지만 전례없던 수요가 유입된 것은 맞다”고 전했다. 그랜드워커힐, 그랜드힐튼호텔 등 연회장과 대형 회의실 예약이 평년 수준인 곳에서도 조만간 예약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높아진 국내 항공·호텔 경쟁력 한몫
업계에선 이해관계가 복잡한 국제회의, 전시·박람회에 비해 계획 변경이 상대적으로 쉬운 기업회의, 단체 포상관광 행사가 이번 특수를 주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와 보험사, 유통·제조회사 등이 한국행을 집중적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이 싱가포르와 대만 등 경쟁지역을 제치고 마이스 대체지로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달라진 가격 경쟁력이다. 동남아와 중국을 운항하는 항공편과 중저가 호텔이 늘면서 한국행 비용이 이전보다 확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3년 새 동남아 기준 한국 여행비용이 적어도 20% 이상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 기간 한국과 동남아를 운항하는 항공편은 25% 가까이 늘어 올 11월 기준 12만342편에 달했다.
2017년 한한령 조치로 20% 넘게 노선이 줄었던 중국 노선도 최근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서울, 부산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저가 호텔이 지난 3~4년 동안 연평균 10% 넘게 늘었다. 2015년 16만여 개이던 전국 호텔 객실은 지난해 처음으로 20만 개를 넘어섰다.
2020 도쿄올림픽 특수 ‘후광효과’도
내년 7월 열리는 2020 도쿄하계올림픽 후광효과도 감지된다. 미국에 있는 렉서스아메리카는 도쿄올림픽 기간에 맞춰 내년 8월 단체로 방한해 기업회의를 열기로 하고 최근 예약을 마쳤다. 국내 마이스업체인 킴스트래블은 현재 유럽, 미주 지역 기업 4~5곳과 도쿄올림픽 기간 한국과 일본을 연계한 단체방문 일정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업계에서도 올초부터 해외 로드쇼 등을 통해 도쿄올림픽 연계관광 상품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대회 기간 도쿄와 인근 도시로 세계 각국 선수단과 관광객이 몰릴 경우 숙박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가까운 한국이 대체지로 부상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 마이스(MICE)
기업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 trip), 컨벤션(convention), 전시·박람회(exhibition) 등의 영문 앞글자를 딴 업계 용어다. 굴뚝 없는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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