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또 내놨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 관계 기관 합동으로 발표한 ‘12·16 부동산 대책’이다. 기습적으로 발표한 이 대책엔 다시 과열 양상으로 치달았던 서울 집값을 확실히 잡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대출 금지가 핵심이다. 9억원이 넘는 주택에 대한 전세·매매 대출을 대폭 금지했다. 15억원을 넘는 초고가 주택은 주택 보유 숫자와 관계없이 대출받을 수 없다. 단골 메뉴인 세제 강화 조치도 포함됐다. 종합부동산세율을 1년 만에 상향 조정하고, 주택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은 최대 8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도 대폭 확대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18번째 나온 부동산 대책이 과열된 주택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 갈증은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투기 수요 근절”… 대출 옥죈 정부
고강도 대출 규제가 이번 대책의 핵심이다. 서울 등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의 담보인정비율(LTV)은 현행 40%에서 주택 가격 구간별로 차등 적용된다. 9억원 이하는 40%가 그대로 적용되지만 초과분은 20%다. 14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 기존에는 5억6000만원을 금융권에서 조달할 수 있었다. 이젠 9억원 초과분에 20%를 적용해 총 4억6000만원만 대출받을 수 있다. 15억원을 넘는 초고가 주택은 주택 보유 숫자와 관계없이 대출받을 수 없다. 모든 금융권의 가계대출과 사업자, 법인 등 차주가 대상이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매입하는 ‘갭 투자’를 막기 위해 전세대출을 받은 뒤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매입하거나 2주택 이상 보유할 경우 전세대출을 회수하기로 했다. 실수요자 대출 요건도 까다로워진다. 앞으로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의 1주택자는 1년 안에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무주택자 또한 1년 안에 전입해야 한다. 지금까진 기존 주택을 2년 안에 처분하면 대출받을 수 있었다. 고가 주택 기준은 공시가격이 아니라 시가 9억원으로 변경된다.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 비율을 따져보면 고가 주택 기준이 낮아진 셈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RS) 관리 기준도 강화된다. DSR은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등 모든 금융권 대출 상환액을 연 소득과 비교해 대출 한도를 따지는 지표다. 지금까진 금융회사가 평균 목표 이내로 관리했다. 앞으론 차주 단위로 DSR 규제가 적용된다.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의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 담보대출을 받는 이들이 대상이다.
종부세·공시가 인상…양도세는 ‘퇴로’ 제시
고가 주택 보유 부담은 더욱 커졌다. 1주택자와 2주택 보유자(조정대상지역 외)의 종합부동산세 세율은 기존에 비해 0.1~0.3%포인트 올린다. 3주택 이상 다주택자나 조정대상지역 2주택 보유자 세율은 0.2~0.8%포인트 상향 조정한다.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종부세 부담 상한은 200%에서 300%로 확대한다. 전년도에 냈던 보유세의 세 배까지 세금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종부세 과세표준을 정하는 공정시장가액 비율이 점진적으로 인상돼 2022년 100%까지 오르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 세금 부담은 더욱 높아진다.
종부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도 시세 수준으로 오른다. 현재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은 68% 안팎이다. 정부는 앞으로 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시세의 80% 수준까지 공시가격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채찍과 함께 당근도 나왔다. 다주택자들의 주택 매각을 유도하기 위한 양도소득세 중과세 한시적 배제 카드가 그것이다. 2주택자의 현행 양도세 중과세율은 52%, 3주택자는 62%다. 정부는 다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에서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양도할 때는 중과세율 적용을 배제하고 다주택자 장기보유특별공제(최대 30%)도 그대로 적용해 주기로 했다. 내년 6월 말까지 양도하는 주택에 적용된다.
분양가 상한제 확대…“공급 부족 우려”
서울 강남 등에 ‘핀셋’ 지정했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도 전국 322개 동으로 확대됐다. 정부는 서울 강남·서초·송파·마포구 등 13개 자치구 전 지역(272개 동)과 강서·노원·은평구 등 5개 자치구 37개 동을 분양가 상한제 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경기 과천·광명·하남시의 13개 동도 상한제 대상 지역으로 묶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으로 서울 집값이 단기적 관망세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가장 강력한 건 대출 규제다. 홍춘욱 EAR 대표는 “지금까진 시중에 막대한 전세자금 대출금이 저금리로 풀리면서 전셋값과 집값이 함께 올랐다”며 “이번 대출 제한으로 ‘갈아타기’를 포함한 고가 주택 수요가 다소 억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를 내년 상반기까지 한시적으로 풀어준 것도 집값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높은 양도세 탓에 발이 묶여 있던 매물이 풀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원종훈 국민은행 세무팀장은 “정부가 양도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배제해 준 건 다주택자에게 매물을 내놓으라는 의미”라며 “절세 혜택을 노린다면 이번 기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책이 단기적인 처방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집값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공급 대책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 확대로 인해 타격을 받는 정비사업 단지가 늘어날수록 도심 공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수급을 해결하지 않고 규제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건 과열된 시장을 잠시 식힐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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