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 사진 백수연 기자] 허진호 감독의 장기는 로맨스다. 그런 허진호 감독의 장기가 이런 식으로 발휘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자가 생각하는 ‘천문’은 두 남자의 우정이 로맨스와 충정을 넘나드는 전에 없던 새 사극이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이하 천문)’의 언론시사회가 16일 오후 서울시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개최됐다. 이날 현장에는 허진호 감독, 배우 최민식, 한석규가 참석했다.
‘천문’은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한 세종(한석규)과 그와 뜻을 함께했지만 한순간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최민식)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작품. 극중 세종은 명나라 명(命)에 따라 간의대를 철거하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다. 이에 ‘천문’ 측은 도입부에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라는 자막을 삽입, 관객에게 양해를 구한다. 이날 한석규는 “기록은 진실이 아니다”고 소견을 밝혔다. 그는 “어떤 것이 진실이냐는 각자의 생각과 관점에 따라 답이 달라지곤 한다”며, “‘천문’은 실록에 기반한 사실을 가지고 만든 상상력의 결과물”이라 했다.
한석규는 SBS ‘뿌리깊은 나무’에 이어 또 세종을 연기했다. 8년 만의 일이다. 한석규는 “‘뿌리깊은 나무’를 하면서 훈민정음을 비롯해 이번 천문까지 왜 세종께서는 모든 것에 끝없는 관심을 가지셨는지 궁금해했는데, 결국 ‘상상력이 정말 풍부한 분’이라는 답이 나오더라”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게다가 천재이기까지 한 그분께서 그의 동료이자 벗으로 장영실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그야말로 대단했을 듯하다”고 했다. 그래서 한석규에게 ‘천문’은 “그 둘의 관계를 조심스레 풀어본 영화”다.
최민식은 천재 과학자 장영실 역을 맡았다. 이날 최민식은 ‘천문’에 과한 미사여구를 붙이는 것을 경계했다. 그에게 ‘천문’은 “한석규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고 최민식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고 허진호 감독님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다. 최민식은 “부디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가 해석한 세종과 장영실을 즐겨 주셨으면 한다”고 바랐다.
한편, 그 해석이 특별해서 눈길이 간다.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에서는 언뜻 브로맨스 이상의 로맨스가 느껴지기도. 이날 허진호 감독은 둘의 관계 묘사가 심상치 않다는 기자의 조심스러운 언급에, “30년간 한 길을 쭉 이어 온 두 배우 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고 그 모습이 영화에 드러난 듯하다. 때로는 두 배우의 케미를 보느라 컷을 못하기까지 했다. 세종과 영실의 브로맨스 이상의 감정이 바로 거기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다. 그 분위기는 기자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미묘한 감정선이 보였다는 취재진의 언급에, 최민식은 “아리까리(알쏭달쏭)하죠?”라는 말로 그 복잡미묘한 구석을 순순히 인정했다.
최민식은 “지근거리에서 세종을 바라보는 장영실의 심정은 황홀경에 가까웠을 것”이라며, “그래서 임금의 용안을 눈부터 목젖까지 유심히 관찰하는 연기를 했는데, 영화에서는 과감히 편집됐더라. 성적 뉘앙스를 넣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흠모하고 성심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이번 연기의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최민식은 그가 표현한 바가 편집된 것에 관해 허진호 감독의 결과물을 수용하고 만족한다면서도 ‘이렇게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아쉬움은 남는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는 “만드는 사람의 재해석”이기에 그 묘사가 추잡스럽거나 인물과 역사에 누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해석이 보다 자유롭게 표현되기를 바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편, ‘천문’은 천문(天文) 외에도 훈민정음과 그에 따른 왕과 사대부의 알력에도 많은 정성을 쏟은 작품이다. 후반에는 지금 ‘천문’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세종’을 보고 있는지 알쏭달쏭할 정도다. 왜 제목을 ‘천문’으로 정했을까. 기자의 질문에 허진호 감독은 “세종과 영실이 근정전 앞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신이 나온다”며,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의 마음과 그 마음을 실현시키려는 영실의 마음이 잘 드러난 좋은 신이라는 생각에 제목을 ‘천문’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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