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놓고 정부와 노동계가 충돌하고 있다. 정부는 현실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준비가 덜 됐다는 기업들의 의견을 받아 예외 조항을 만들었지만 노동계는 그 예외 조건이 너무 많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1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50인 이상 299인 이하 기업에 대해 주 52시간 확대 시행을 예정대로 하되 1년간의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제도 시작이 사실상 1년 유예되는 것이다. 정부는 300인 이상 기업에도 최장 9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당초 노동부는 50∼299인 기업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50∼99인 기업에는 계도기간 1년에 선별적으로 6개월을 추가하는 등 최장 1년 6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별도 기간의 추가 없이 1년의 계도기간을 일괄적으로 부여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또한 정부는 주 52시간을 넘겨도 일을 하도록 하는 특별연장근로 요건도 확대한다. 현재는 재난 수습 상황에 한정돼 있지만 주문이 밀려 납기일이 촉발한 경우 기계 등 설비 고장 상황, 대량 리콜 사태 등에도 특별연장근로가 허용된다.
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경영계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주 52시간제 시행 자체를 미룰 것을 요구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42%가 준비가 안 됐고 경제여건까지 어려워 보완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러한 보완책에 반발하고 있다. 1년이나 시간을 더 준데 이어 예외 조건도 너무 많아 주 52시간 근무제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미 300인 이상 기업은 올해 3월 계도기간이 끝나 주 52시간제 안착 단계에 들어간 상황에서 50∼299인 기업의 주 52시간제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동 조건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노동계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를 위한 시행규칙 개정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에 경영상 사유를 포함하는 것은 특별연장근로를 '특별한 사정'이 생긴 경우로 제한한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노동계는 정부가 추진 중인 시행규칙 개정이 행정권 남용을 통한 기본권 침해의 소지도 있다고 보고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11일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발표가 '노동시간 단축 포기 선언'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노동 존중을 위한 차별 없는 공정 사회'는 물거품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같은 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는 결국 노동시간 단축 정책마저 포기했다"며 "노동기본권을 위한 법은 유예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위해서는 법에도 없는 조치를 강행했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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