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둘째 아이의 설움'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첫째 아이에게는 새 옷을 사 입히지만 둘째는 그 옷을 물려입힌다. 그리고 셋째는 두 번이나 물려 입은 옷이 낡아서 새 옷을 사 입는다. 그래서 둘째는 첫째, 셋째보다 상대적 박탈감을 더 느낀다는 농이다. 그리고 이는 아이를 몇이고 낳던 베이붐세대 시절 부모와 자식들의 얘기다.
그렇다면 아이를 한 명도 낳지 않으려는 저출산 시대인 지금의 부모들은 어떨까. 7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합계 출산율이 0.88명까지 떨어졌다. 서울 기준으론 0.69명이다. 동서고금을 둘러봐도 이런 저출산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으면서도 아이를 낳지 않으니 당연히 유아용품 산업이 쪼그라들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업계 일각에선 오히려 호황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의 7월 보고서에 따르면 출생률 감소에도 불구하고 유·아동 관련 산업은 성장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출생아 수는 2009년 44만5000명에서 2015년 43만8000명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유아용품 시장 규모는 1조2000억원에서 2조4000억원으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올해 유아용품 시장은 4조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엔젤 산업'이라고도 불리는 영유아 관련 산업은 날로 고공성장하고 있다.
출산율 하락이 되레 시장을 키우고 있어서다. 둘째, 셋째가 없으니 첫째에게 부모들 지원의 '쏠림 현상'이 일어났다. 저출산 시대서 자식을 하나 낳는 대신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골드키즈' 사회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백화점 아동 장난감 매장에서 만난 김찬우(33)씨는 "다른 건 몰라도 아기 몸에 닿는 건 비싸더라도 질 좋은 제품을 눈으로 보고 사야 된다"라며 인터넷 쇼핑몰보다 비싼 백화점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아동 장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0% 신장했다. 그중에서도 신생아 용품은 11.4%로 두 자리 수로 성장했다. 백화점 관계자 역시 "프리미엄 및 고급 유아 제품이 최근 잘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부모뿐 아니라 양가 조부모와 삼촌, 이모 등 어른 8명이 저출산이 심화돼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이에게 지갑을 여는 '에잇포켓(8-pocket)' 트렌드도 이의 마찬가지다.
유아용품의 시장의 성장세에는 높아진 초산 연령과도 관련이 있다. 국내 평균 초혼 연령은 1990년 남성 27.79세 여성 24.78세에서 지난해 33.15세, 30.4세로 크게 뛰었다. 결혼 시기가 늦어지면서 초산 연령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지난해 기준 국내 산모의 초산 연령은 31.6세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낳는 만큼 경제적 여유가 더 확보되면서 아기에게 쓰는 돈도 늘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유아 시장의 성장이 소득 양극화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소득이 낮을수록 출산을 포기하는 등 저소득층에서 '출산포기자'가 늘고 있다. 반면 고소득자의 출산율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가입자 소득분위별 분만관련수 급여건수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소득 상위 40%인 4~5분위는 소득 하위 40%인 1~2분위보다 출산율이 2배 이상 높았다. 양 계층간 격차는 2008년 1.693배에서 2013년 2.056배로 2배를 넘은데 이어 2017년엔 2.225배까지 확대됐다. 출산 자체는 적어졌지만 부모 중 경제력을 갖춘 고소득층이 기존보다 많아지면서 유아용품 시장이 활력을 잃지 않았다는 얘기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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