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낸 세계 최대 통신칩 제조업체 퀄컴(Qualcomm)이 재판에서 패소했다.
서울고법 행정7부(노태악 이정환 진상훈 부장판사)는 4일 퀄컴 인코포레이티드, 퀄컴 테크놀로지 인코포레이티드, 퀄컴 CDMA 테크놀로지 아시아퍼시픽 PTE LTD 등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에서 공정위가 부과한 1조원대 과징금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앞서 공정위는 2016년 이들 3개 회사에 역대 최대 규모인 1조300억원의 과징금을 매기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퀄컴이 이동통신용 모뎀칩세트 공급과 특허권을 연계해 기업들에게 '갑질'을 하고, 특허권을 독식했다는 판단에서다.
퀄컴의 위법행위로 모뎀 칩셋 시장, 이동통신 특허권 시장에서 경쟁제한효과가 발생해 궁극적으로 업계의 연구개발(R&D) 활동을 저해하고, 기술 진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퀄컴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이듬해 2월 서울고법에 불복 소송과 함께 시정명령 효력정지 신청을 냈다. 회사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본안소송 판결 전까지 시정명령을 미뤄달라는 취지였다.
퀄컴 측은 "공정위 처분은 사실관계 및 법적 근거의 측면에서 모두 부당할 뿐만 아니라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보장된 적법절차에 관한 미국 기업들의 권리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법정에서도 업계 관행을 따랐을 뿐,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지 않았다고 퀄컴은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1조원대 과징금 부과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의 첫 판단이란 의미가 있다. 공정거래 사건의 경우 전속고발권을 갖는 공정위가 1심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번 사건은 퀄컴의 휴대폰 제조사인 삼성전자, LG전자, 애플과 화웨이는 물론 경쟁 칩셋 제조사인 인텔·미디어텍 등 전 세계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관심을 받았다. 법원 판결이 기업들이 내는 특허료에 큰 영향이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퀄컴의 패소로 모뎀 칩셋을 제조하는 경쟁사에 특허 사용을 막았던 행위와 퀄컴의 모뎀 칩셋을 안 쓰는 휴대폰 제조업자들에 특허 로열티를 차별적으로 부과하는 행위에 제동이 걸릴 전망. 국내 제조사들로서는 향후 퀄컴에게 납부하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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