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 송하예, 임재현, 전상근, 장덕철, 황인욱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멤버 박경이 지난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가수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음원 사재기는 멜론 등 주요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에 오르기 위해 다수의 기계로 음원을 반복 재생해 순위를 인위적으로 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트위터 글을 시작으로 파문은 급속히 확산됐다. 언급된 가수들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일부 가수들은 브로커들로부터 사재기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는 폭로를 연이어 하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음원 사재기 관련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네티즌들도 음원 사재기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음원 사재기 논란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3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다. 하지만 이제 트위터 한 줄만으로도 논란이 재점화되고 폭발적인 위력이 나타날 만큼 위기감과 경각심이 커진 것 같다. 대중이 아니라 ‘기계픽’(기계가 고른 음악이란 뜻의 신조어)에 처절히 무너져 내린 신뢰와 이와 함께 사라져버린 음악의 ‘아우라’. 이를 다시 복구할 수 있을까.
음악 차트의 영향력은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커졌다. 대중들의 음악 이용 방식이 대대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CD에서 음원 다운로드로 바뀐 데 이어 음악을 실시간으로 재생해 듣는 음원 스트리밍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되며 음원 사이트에 ‘실시간 음악 차트’가 생겨났다. 음악 자체가 대중의 즉각적인 감흥을 이끌어내는 장르인데다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반응이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차트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차트가 주는 신뢰도와 아우라는 사라지고 있다. 과거엔 상위권에 오른 노래를 처음 듣기 전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떤 노래일지 궁금해서였다. 듣고 나선 감탄했고 가사를 저절로 외우게 될 정도로 빠져들었다. 낯선 신인의 곡이 올라와도 마찬가지였다. 차트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신인의 곡도 유심히 들었고, 좋은 가수를 알게 됐다는 생각에 괜스레 뿌듯해지기도 했다. 요즘엔 이야기가 달라졌다. 상위권에 갑자기 올라온 노래를 보고도 이전만큼 호기심이 생기지 않고, 듣고 나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신인이 올라오면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내게 된다.
창작자들의 상처도 깊어지고 있다. 창작자들은 자신의 노력이 담긴 음악이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며 좌절한다. 창작자들 사이에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도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지난해 가수 윤종신은 “수많은 창작자가 음원 사이트 첫 페이지에 자신의 신곡을 노출하려 줄을 서 있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다 지쳐 애써 만든 곡을 그냥 묵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업계가 음원 사재기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을 아직 못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 관련 사업자가 증빙자료와 함께 신고할 수는 있다. 신고가 들어오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음원 차트 업체들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행정조치를 한다. 행정조치 결과에 따라 필요하면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원 이용자의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더러 이상 패턴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비교할 만한 데이터가 축적돼야 한다.
결국 근본 원인이 된 실시간 차트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 최대 음원 사이트인 미국 스포티파이에는 실시간 차트가 없다. 큐레이션을 통해 이용자들에게 취향에 맞는 음악을 소개해줄 뿐이다.
음악계의 자성도 필요하다. 사재기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양한 예술활동에 참여했던 레바논 출신의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래의 비밀은 노래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지닌 진동과 듣는 사람의 마음의 떨림 사이에서 발견된다.” 진동과 떨림, 그 사이에 사람이 아닌 기계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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