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등학교도 못 갈 뻔했다. 도자기 굽는 부친이 가업을 잇길 원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몰래 용산공고에 원서를 넣은 그는 산학우수장학생이 되어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했다. 그가 자원한 분야는 잘나가던 TV가 아니라 모두가 기피하던 세탁기였다. 그는 최고의 세탁기 개발에 매진해 LG세탁기를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려놓았다.
어제 퇴임한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공고 출신 최초로 LG전자 최고경영자가 된 인물이다. 그가 밝힌 성공 비결의 첫 번째는 ‘열정’이다. 그는 입사 후 하루 18시간 공부해서 남들이 대학 4년간 배울 과정을 1년 만에 끝냈다. 원천기술을 배우러 10년간 150차례 일본을 다녀왔다. 전자회사가 몰려 있던 오사카 지역의 사투리까지 익혔다.
어렵사리 얻은 정보를 머리에 담아 온 뒤에는 공장 2층에 간이 침대와 주방시설을 마련해놓고 밤을 새웠다. 그렇게 세계 최초의 ‘다이렉트 드라이브’ 시스템을 개발했다. 모터와 세탁통을 벨트로 연결해 돌리는 일본식이 아니라 모터로 직접 통을 돌리는 신기술이었다. 이는 LG전자가 세탁기 세계 1위로 올라서는 변곡점이 됐다.
이런 열정으로 갈고닦은 ‘실력’이 두 번째 성공비결이었다. 드럼 세탁기와 통돌이 세탁기를 결합한 ‘트윈워시’, 손빨래 구현 6모션 세탁기, 터보 워시 적용 세탁기 등이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최고경영자가 된 뒤 LG전자의 모든 사업부를 맡게 되자 스마트폰 10여 대를 밤새 분해하며 ‘기술 LG’의 새 역사를 썼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혁신에 대한 집념’이었다. 관성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제품을 계속 개발하는 혁신 덕분에 ‘세상에 없던 가전’이 나왔다. 가전의 핵심 부품인 모터 기술을 오랫동안 연구한 ‘축적의 시간’도 중요했다. 그는 “자신의 일에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전문가가 된다”며 후배들에게 ‘1만 시간의 법칙’을 강조했다.
동기들이 야간대학을 다닐 때도 공장으로 향했던 그는 “학력은 능력의 20%도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신념으로 4차 산업혁명과 로봇 기술 개발에도 몰두했다. 남다른 열정과 실력, 끊임없는 혁신으로 LG의 ‘가전 신화’를 이끈 그가 43년간 몸 담은 회사를 떠났다. 회사와 대주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 출발하는 그의 뒷모습이 듬직하고 또 아름답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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