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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딱지만 두 차례…'국산 골프채' 지키려 잡초처럼 버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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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골프 브랜드 랭스필드 사무실에 들어서면 일본 골프클럽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한눈에 봐도 100여 개의 일본 골프클럽이 여러 개의 캐디백에 나뉘어 꽂혀 있다.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노노재팬’ 움직임이 일자 양정무 회장(58·사진)이 일본산 골프채를 가져오면 랭스필드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보상판매를 시행해서다. 최근 경기 포천 랭스필드 본사에서 만난 양 회장은 “드라이버부터 ‘풀세트’를 가져오는 손님까지 다양하다”며 “사들인 일본 골프클럽은 재판매하지 않고 자체 처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랭스필드는 한국 골프산업 초창기에 만들어진 국산 골프 브랜드 중 하나다. 1991년 법인을 설립한 뒤 1992년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그 사이 대기업들이 골프 제조산업에 뛰어들었다가 백기를 들었다. 잡초처럼 버텼던 랭스필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전성기를 맞이했다. 매출은 100억원이 넘었고 시장 점유율은 한때 7~8%에 달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연속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랭스필드 PGA선수권 대회’를 열 정도였다. 국산 골프 브랜드를 대표해 평양 골프장에도 렌털이나 연습용 클럽으로 건너갔다는 게 양 회장의 말이다.

“철강분야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을 때 하루는 골프 클럽을 사러 매장에 갔어요. 죄다 일본 아니면 미국 브랜드이길래 ‘우리나라 브랜드는 없냐’고 물어봤죠. 직원이 저를 위아래로 한번 훑더니 굳이 왜 국산을 찾느냐는 표정을 짓더라고요. 그래서 홧김에 무작정 골프사업을 시작했어요. 당연히 초반엔 어려웠죠.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부터 개선되기 시작하더니 장사가 잘됐죠. 전국에 매장도 20여 개가 있었으니까.”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일부 거래처가 부도를 맞고 과중한 특별소비세 납부 등으로 회사는 흔들렸다. 랭스필드도 결국 2002년 부도가 났다. 원래 하던 사업마저 어려워졌고 집에는 압류 기타 강제처분의 표시인 이른바 ‘빨간 딱지’가 곳곳에 붙었다.

“(빨간 딱지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붙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오죽하면 제 아내가 ‘랭스필드 포기하기 전까진 가전제품을 안 산다’고 선언까지 했겠어요. 그래도 우리나라 브랜드라는 자부심 하나로 끌고 온 자식 같은 랭스필드를 어떻게 포기하겠어요.”

양 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골프 연습장을 돌며 골프클럽 영업을 했고 현지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2005년 랭스필드를 다시 일으켜 미국과 일본 등 ‘공룡기업’들 사이에서 국산 브랜드의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다. 매출이 아직은 외국 브랜드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이 중 절반이 수출에서 나온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랭스필드는 현재 동남아시아와 스리랑카, 피지 등 골프산업이 걸음마 단계에 있는 시장을 공략해 호응을 얻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클럽이라는 자부심, 책임감으로 버텼어요. 돈 안 되는 ‘왼손잡이 클럽’을 만들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왼손 클럽은 1년에 10개가 팔릴까 말까 하지만 언제든 왼손잡이 손님이 우리 클럽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제작해 놓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일할 겁니다. 많은 골퍼가 이런 ‘진정성’을 언젠가는 알아줄 거라고 믿거든요.”

포천=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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