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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영의 논점과 관점] 끊어내야 할 정권의 '기업 인사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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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인 KT의 차기 회장을 뽑는 레이스가 시작됐다. 경쟁률은 37 대 1이다. 현직 임원 7명을 포함해 전직 임원, 옛 정보통신부 고위 관료, 전직 국회의원까지 도전장을 낸 것은 KT 회장이 매력적인 자리이기 때문이다. 연매출 23조원에다 계열사 43개, 직원 6만1000여 명(계열사 포함)을 거느린 재계 12위 그룹의 최고경영자(CEO)로 지난해 연봉만 14억원에 달했다.

KT 회장 선임이 주목받는 이유는 ‘흑역사’ 때문이다. 공기업 KT가 민영화된 것은 2002년 5월. 황창규 현 회장에 앞서 이용경 사장, 남중수 사장, 이석채 회장 등 세 명이 CEO를 지냈다. 남 사장과 이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낙마했다. 공교롭게도 정권 교체 시기와 겹쳤다. 배임 등의 혐의로 압수수색과 검찰 수사를 받고 중도사퇴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태생적 한계로 정권 외압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KT회장 선임 '외풍' 차단이 관건

2014년 취임한 황 회장도 2017년 연임에 성공했지만, 그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적잖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경영고문 부정 위촉’ 의혹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황 회장은 민영 KT에서 연임해 임기를 채우는 첫 CEO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회장 선임 과정에서 ‘외풍(外風)’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벌써부터 “누가 여당 실세에 줄을 대고 있다” 등 온갖 소문과 설(說)이 떠돌고, 일부 후보들을 비방하는 괴문서까지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청와대 참모진에게 “민간 기업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정부 역시 민간 기업 인사에 개입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백복인 KT&G 사장 선임 과정에서 2대 주주인 기업은행을 동원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다 실패했고,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연임을 저지하려다 체면을 구겼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임기 2년을 남겨두고 사의를 밝혀 외압 의혹이 불거졌다.

이들 회사의 공통점은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라는 것이다. KT의 국민연금 지분은 12.67%에 달한다. 정부 지분이 1주도 없음에도, 정권을 잡으면 CEO를 입맛대로 바꾸거나 인사에 관여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포스코, KT, KT&G가 민영화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정권은 여전히 공기업처럼 취급하고, 인사에 개입해도 된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국민연금 통한 경영간섭 멈춰야

더 심각한 것은 정부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행사를 통해 민간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했다는 점이다. 국내 상장사 가운데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은 313개에 달한다. 민영화된 공기업에서와 같은 인사 개입이 민간 기업에서도 벌어질 위험이 커진 것이다. 정부는 최근 내놓은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에서 법령상 위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유죄 확정 전이라도 이사 해임을 요구하기로 했다.

KT 외에도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의 임기가 내년에 끝난다. 이번 KT 회장 선임은 정권의 ‘민간기업 인사 불개입 원칙’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아무런 외압 없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로 KT 새 회장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 KT가 정치적 외압에 못 이겨 전문성이 떨어지는 낙하산 인사를 회장으로 선임한다면 회사뿐 아니라 ICT산업에도 불행이다. 이번에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국민연금을 앞세워 민간 기업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부의 구상도 중단돼야 한다.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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