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적 체납자는 더 압박해야 한다.”(기획재정부) “단순 체납자까지 가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경찰)
정부가 추진 중인 ‘고액·상습 체납자 감치 제도’를 두고 정부 내부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관철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 일각에선 ‘과잉 처벌’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경찰청도 “고의적 탈세 여부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치장에 가두는 건 지나치다”고 반대 목소리를 냈다.
19일 기재부와 국회에 따르면 경찰청은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세금 체납자 감치 제도 도입 반대 의견서를 냈다. 정부는 지난 8월 고액·상습 체납자를 최대 30일간 유치장에 가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세징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달부터 개정안의 국회 심사가 시작됐는데 지난 8일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여기에 경찰청까지 제도 도입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경찰청은 의견서를 통해 “상습 체납자는 재산 압류, 명단 공개, 출국 규제 등 제재 수단이 있음에도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법을 추가로 도입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 위배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기나 부정한 행위로 조세를 포탈한 자는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형벌에 처한다”며 “이런 행위가 없는 단순 체납자에 대해 형벌과 동일한 절차로 감치를 적용하는 것은 법 체계상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감치 대상자의 반발로 현장 경찰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경찰청은 “지금도 감치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돈 안 냈다고 경찰이 끌고 가느냐’며 항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감치 대상자가 동행을 거부할 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해 원만한 집행이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민사 소송 중 재산 목록을 내지 않는 채무자와 1000만원 이상의 과태료를 3회 이상 내지 않은 사람에 대해 감치 제도를 운용 중이다.
법조계에서도 감치 확대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는 9월 반대 의견을 냈다. 세금 체납자를 형사 처벌 대상자와 비슷하게 인신 구속하는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나고, 민사집행법 등 운영 실태를 봐도 감치 제도의 실효성이 낮다는 주장이다.
기재부는 제도 시행이 필요하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호화 생활을 누리면서도 계속 세금을 안 내는 악질적인 체납자를 압박할 수단이 필요하다”며 “감치 요건이 까다로워 제도가 남용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개정안은 감치 대상을 △국세를 3회 이상 체납하고 △체납일로부터 1년이 지났으며 △체납 국세가 1억원 이상이면서 △납부 능력이 있는데도 정당한 이유 없이 세금을 체납한 자로 제한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도 기재부에 힘을 실었다. 윤종인 행안부 차관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에서 “고액·상습체납자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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