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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처럼 우러난 단색 조형…"마음에 움튼 소망 색칠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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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지전 김종순 씨(67)는 어린시절 아버지(난곡 김응섭) 어깨 너머로 문인화와 사군자 그림을 배웠다. 한국과 중국의 문인화 책을 읽으며 틈틈이 화법도 익혔다. 2012년 작고한 김흥호 전 이화여대 평생대학원장에게 8년간 동양철학을 배우며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틀에 얽매이지 않는 미술을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서예가 김양동 선생에게 서법도 전수했다. 독학으로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수련과 연습으로 묵화와 행위예술(퍼포먼스), 현대미술도 섭렵했다.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적응 훈련이었다. 40대 중반에는 동서양의 융합을 시도한 그림이 뭘까 고민했다. 결국 정형화된 틀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추상화에 도전했다.


김씨가 추상미술과 동행한 지난 20년의 세월을 펼쳐 보이는 전시회를 마련했다.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이달 28일까지 여는 개인전을 통해서다. ‘색전(色展·Color Exhibit)’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다채로운 단색으로 화면을 구성한 명상적이고 시적(詩的)인 색면 추상화 30여 점을 걸었다. 고향 장맛처럼 우러난 색채의 아우라를 늦가을 좋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화가의 마음을 살짝 얹었다.

18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씨는 “전통적인 채색의 물성과 동양화 모필, 가는 실을 활용해 한국적 단색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싶다”고 했다. 색을 머금은 물감과 물이 만나 이룬 농도, 한 획 한 획의 질감을 만들어 ‘한국적 단색언어’를 창조하겠다는 다부진 의지로 읽힌다. 그의 작품은 얇은 한지를 20겹 정도 깔고 무수히 반복하는 획으로 캔버스에 서양 물감을 먹이면 뽀얀 색감이 아래로 깊숙이 침투했다가 다시 밑에서 위로 우러나온다. 물감이 흠뻑 젖은 한지가 마르면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다. 단색으로 칠해진 화면이지만 물감이 스며든 흔적이 화려하고 은은하다.

작가는 “색이 있어 형(形)이 되고, 음(音)이 있어 형이 되는 경지를 형상화한 것”이라며 “마음속에 움튼 소망과 희망, 기쁨 같은 걸 포착해 색감으로 삭였다”고 설명했다. 색을 화면에 공들여 바르고 가느다란 실선들로 심성(心性)을 삼투시켜 단색화(모노크롬) 미학을 구현했다는 얘기다.

마음속에 침전된 이야기를 붓으로 길어 올려 색을 입히고 질감을 내는 데 음악적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역동적인 음악은 꿈틀거리는 색선으로, 현의 떨림은 색면의 형태로 축조한다”는 그의 말이 다부지다. 가령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을 듣고는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웅장함과 거대함을 채색하고,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곡 ‘죽음과 소녀’를 통해서는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색채로 변주한다. 또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를 위한 카프리치오’에서는 상실의 의미를 끄집어내고, 비탈리의 ‘샤콘’에서는 생명의 탄생을 색칠한다. 음악을 곁들여서인지 지극한 정성으로 칠하고 매만져 이룬 작품들은 그의 신체, 감정, 간절한 소망 등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처럼 빛난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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