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버티자!” 기업인들의 이른 송년모임에서 나온 건배사다. 찬바람 쌩쌩 불고 각자도생 외에는 길이 안 보이는 막막함을 함축한다. 뒤이은 건배사가 “내년에, 또 보자!”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라’는 이심전심의 위로로 들린다.
거의 모든 ‘경제 계기판(지표)’이 우하향한다. 기업하고, 장사하며 월급을 줘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통감한다. ‘이대로 가면 다 망한다’는 거다. 음식점, 옷가게, 사무실, 공장 등 업종·지역·규모를 가리지 않고 임대 표지가 늘어난다. 은퇴 후 공단 인근 원룸을 임대하던 선배는 “방 10개 중 6개가 공실”이란다. 텅 빈 그곳들에서 한때 ‘밥’을 벌던 무수한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온몸이 쑤시듯 경제주체들은 맥이 풀려 있다. ‘J노믹스 설계자’라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앞선 두 차례 위기가 돈줄이 막힌 동맥경화였다면 지금은 골다공증과 같은 실물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당장 죽을 고통은 아니어도 나중에 뼈가 부러지고 주저앉으면 회복 불능이란 것이다.
정부도 모르진 않는 것 같다. 당·정·청이 돌아가며 “뼈아프다” “아픈 대목이다” “안타깝다”는 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뿐이다. 2년 반 동안 허망한 ‘소득주도성장’을 부여잡고 성장도, 분배도 다 놓치고도 달라진 게 없다.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3실장이 한목소리로 “지난 2년 반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전환의 시간이었고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워 정상화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경제행보가 총 349회, 5만9841㎞로 지구를 1.5바퀴 돌았다는 자랑도 나왔다.
‘성장이 멈춘 급성 심근경색’이라는 야당의 혹평은 과하다 해도, 청와대의 인식에 누가 공감할까 의문이다. 경제 난맥상의 최종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국민이 아파도 외면하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며 자신들의 오판을 남의 말 하듯 하니 ‘유체이탈 정부’라고 할 만하다. 검찰이 타다를 기소한 뒤 쏟아진 장관들의 ‘아무말 대잔치’도 그랬다.
요즘 내놓는 정책, 들리는 설왕설래마다 ‘기·승·전·총선’이다. 이낙연 총리와 장차관 차출론은 내각을 더 왜소하게 만든다. 한·일 갈등이 총선에 유리하다던 여당 싱크탱크는 최근 모병제로 여론을 떠본다. 오로지 선거 승리, 집권 연장이 지상목표인 듯하다. “경제는 버린 자식”이란 탄식이 이해가 간다.
‘경제회생의 골든타임’이란 말도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총선 악재가 되지 않도록 ‘2% 성장을 사수하라’는 특명이 경제팀에 내려져, 내년 예산까지 앞당겨 뿌릴 태세다. 성장과 기업활력 정책을 다뤄본 적 없는 이들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곤 헬리콥터식 현금 살포뿐이다. ‘재정 중독’이란 비판에는 “곳간에 작물을 쌓아두면 썩는다”고 맞받아친다. 국민 혈세로 쌓아올린 재정을 마치 창고 속 정부미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대다수 경제전문가가 구조개혁과 정책 전환을 촉구하다 지쳐버렸다. 정책결정 구조상 정부가 스스로 바꿀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집권층의 ‘좌파적 세계관’은 불평등, 복지, 환경 등 문제 제기는 잘해도 해결에는 미숙하다. 부동산 규제와 평준화 교육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서울 강남 집값·전셋값 폭등을 유발한 게 그런 사례다. 이분법과 단선적 사고로는 삶의 복잡성, 사회문제의 다차원성을 이해할 수 없는 탓이다.
맥킨지가 우리 경제를 ‘서서히 끓는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한 게 벌써 6년 전이다. 과거 정부들도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지금처럼 총체적으로 급전직하하는 상황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
경제 추락을 막으려면 기업의 활력 제고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려면 규제혁파, 노동개혁, 공평한 법치가 필수지만 모두 난망이다. 실세들의 기업관(觀)은 ‘착취하는 자본가’이거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맨 아래층을 보듯 한다. 선진국은 정치가 경제에 봉사하고, 후진국은 정치가 경제 위에 군림한다. ‘정치는 달인, 정책은 숙맥’이어선 경제의 골다공증을 고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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