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 및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2030년 전기요금이 2017년에 비해 30%가량 오를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 원전 이용률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비용만 계산한 수치다.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 요인은 2030년까지 10.9%에 불과하다”는 정부 설명과 대비되는 결과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2일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에너지정책, 우리가 가야 할 길’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서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노 연구위원에 따르면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2030년까지 발전비용이 2017년 대비 18.2~36.8% 늘면서 전기요금 인상률도 14.4~29.2%에 달할 전망이다. 2040년에는 전기요금 인상률이 2017년 대비 32~47.1%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그는 “정부는 원전을 줄여나가는 가운데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퇴출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대체하고 신재생에너지 전력망을 구축하는 데도 비용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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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인상 불가피
정부, 여론 눈치 보느라 미래세대 부담 키워"전력 전문가들은 “탈원전 정책에 따른 비용은 늘어가는데 정부가 여론을 의식해 전기요금 인상을 미뤄두면 미래 세대에 부담을 미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현국 삼정KPMG 상무는 “한국에서는 전기요금이 원가보다 여론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며 “에너지전환으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데 일시적으로 지금 전기요금을 누르고, 나중에 급격하게 올리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 역시 “선진국에서는 시장 원칙에 따라 전기요금이 결정되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논란이 없다”며 “전기요금에 많은 규제가 가해지는 나라일수록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과 연동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한국전력이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을 마련하면 내년 상반기까지 절차에 따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전기요금 인상 논의를 미뤄둔 셈이다.
한전 부실화에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한전은 탈원전 정책이 시작된 2017년 4분기 1294억원 적자로 돌아선 뒤 지난해 2080억원, 올 상반기 9285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한전의 재무구조가 악화돼 에너지 가치사슬에 있는 많은 기업에 제대로 보상을 해주지 못하면 전체 산업 생태계가 흔들릴 것”이라며 “에너지산업이 좀비산업으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재생에너지 의무공급제도(RPS) 등 정부 정책비용을 포함하면 한전의 부담은 더욱 불어난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정책비용이 올해만 약 7조9000억원에 달하고, (현 정부 출범 전인) 3년 전보다 3조원 정도 늘었다”고 했다. 유 교수는 “정부는 2030년 이후 RPS 의무량을 10% 이상으로 늘려나갈 방침이고 한전의 배출권 거래제 비용 부담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라며 “이 같은 정책비용이 더해지면 전기요금 인상 압박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전 측 토론자로 참석한 임낙송 한전 영업계획처장은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이 줄어들수록 비용이 오를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이 ‘탈원전’이냐 ‘에너지전환’이냐 언어에 갇혀 있는데 국민들에게 ‘전기요금을 지금 제대로 부담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확정 시점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올해 수립해야 하는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부터는 환경부의 전력환경영향평가 대상이 됐다”며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를 언제까지 완료하느냐에 따라 전력수급 기본계획 확정 시점이 달라질 수 있어 확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