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근거도 없고 법안 제안조차 안 되고 있는데 예산을 반영하는 건 국회를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따져 물은 말이다. 정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자신의 질의 순서가 오자 곧바로 “현 정부가 무리하게 재정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법적 근거도 없이 밀어붙이는 예산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형사공공 변호인 제도다. 형사재판 중인 피고인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에 체포된 피의자까지 수사 단계부터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법무부는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관련 예산 18억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법원과 변호사업계가 “법무부와 검찰이 피의자를 지원하는 것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대하면서 지금까지 근거법인 법률구조법 개정안은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정 의원은 “법률안이 제안도 되지 않은 예산을 올린 것은 정부의 오만과 무리함”이라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기초연금 인상(1조6813억원), 공익형 직불제(1조600억원), 대학 평생 교육 강좌 개설 지원(49억원) 등 법적 근거 없는 예산 사업은 수두룩하다. 같은 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국민 취업 지원’ 예산이 도마에 올랐다. 저소득층에게 최대 300만원까지 취업수당을 지원하는 이 사업에는 내년도 예산 2771억원이 편성됐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은 “구직자 취업촉진법이 통과되지 않은 만큼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나중에 법 통과 후 예비비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결위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법적 근거가 없는 예산 사업은 총 13개, 금액으로는 14조3234억원 규모다. 정부는 반드시 관련 법안이 통과된 뒤에야 예산안을 제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결위에서 “과거에도 법과 예산을 동시에 제출하고 국회에 심의받은 여러 사례가 있다”고 답변했다. 야당은 그러나 여야 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사업에 이처럼 법적 근거 없이 대규모로 예산이 편성된 전례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가뜩이나 513조원에 달하는 ‘초슈퍼’ 규모로 편성돼 논란을 빚은 내년도 예산안은 법적 근거 미비 사업 때문에 심사 과정에서 더욱 홍역을 치르게 됐다. 정부와 여당 스스로 ‘예산 정쟁’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국민이 손해를 안 보게 예산 심사의 속도를 내고 집중하자”(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여당의 외침이 공허하게 들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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