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소송으로 기업들이 이렇게 골머리를 앓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한국은 근로기준법 시행령이 모호해 법원 판결이 사실상 입법 효과를 내고 있어 대법원에서 균형을 잡아줘야 하는데….”
조영길 법무법인 아이앤에스 대표변호사(54·사법연수원 24기·사진)는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요한 노동 사건은 대법원 소부가 아니라 전원합의체가 처리해줘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대표는 법조계에서 통상임금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와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등을 거쳐 2000년 노동 전문 로펌을 차렸다. 그는 지난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서울의료원을 대리해 “기업이 근로자 복지 차원에서 지급하는 복지포인트는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조 대표는 “통상임금 등 노동 사건은 대법원이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큰 파장을 일으킨다”며 “중요한 사건일수록 대법원 소부(대법관 4명)가 아니라 전원합의체에서 대법관 13명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의 과정이 공개되지 않는 소부에서 특정 성향의 주심 대법관이나 재판연구관이 노동 판례를 흔들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조계와 재계 등의 관심을 모은 인천 시영운수 통상임금 소송에서 사측을 대리한 조 대표는 “아쉽다”고 했다. 지난 2월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가 “근로자의 추가 수당 요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엄격하고 신중하게 따져야 한다”며 노조 측 손을 들어준 사건이다.
조 대표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근로자가 소급 청구하는 수당·퇴직금이 회사에 경영난을 초래할 정도로 크다면 신의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시영운수 판결에서 신의칙 적용을 바늘구멍처럼 좁혀놨다”고 지적했다. 당시 재판부가 실제 현금이 아니라 재무제표상 이익잉여금을 보고 회사가 충분히 수당을 지급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는데, 이런 논리대로라면 경영 위기를 인정받을 기업이 거의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사실상 소부가 전원합의체의 논리를 부정해버린 꼴이라 하급심과 기업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통상임금 신의칙 적용 기준을 전원합의체에서 재정립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법 학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조 대표는 “학계에서 노동계 입장을 반영한 논문과 경영계 입장을 반영한 논문 수가 대략 10 대 1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이 오너 형사 사건에만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자체 연구소든 기업단체를 통해서든 노동법과 노동경제학 연구에 투자해 사법부에 균형적인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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