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 강남구 개포동, 서초구 반포동 등 27개 동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이곳에 속한 100여 개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이 강력한 분양가 통제를 받게 됐다. 이들 사업장은 일반분양가가 낮아지는 만큼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올라가 사업 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아파트값 상승세가 두드러졌던 목동, 흑석동, 경기 과천 등 일부 인기 지역들은 이번 규제에서 제외돼 반사이익을 얻게 됐다. 전문가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돼도 신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 저금리 기조 등의 이유로 서울 아파트 가격 안정으로 이어지기는 역부족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남3·대치 은마·압구정 현대 사정권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98개 재건축 사업장과 7개 재개발 사업장 등 총 105개 단지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곳은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다. 주변 시세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분양가격이 책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강남구는 개포 대치 도곡 삼성 압구정동 등 8개 동에 걸쳐 총 43개 재건축 단지가 포진해 있다. 개포주공 1단지와 주공4단지 등 관리처분을 끝낸 단지들이 대표적이다. 압구정 현대·한양, 대치동 은마 등 재건축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단지들도 있다.
서초구에서 분양가 상한제에 포함된 사업장은 총 27곳이다. 잠원동에 신반포 12차·13차·14차 등 16개 단지가 몰려 있다. 사업 단계가 막바지에 이른 주요 사업장으로는 반포동 경남·신반포3차(원베일리)와 방배동 일대 주택재건축(5구역 13구역) 등이 있다. 송파구에서는 잠실주공5단지 진주 미성크로바 등 13곳, 강동구에서는 둔촌주공과 길동 신동아1, 2차 등 3곳이 사정권에 들었다.
용산구에선 한남동과 보광동이 상한제 적용 대상에 오른 대표적인 지역이다. 최근 시공사 수주전이 한창인 한남뉴타운 내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한남2구역과 5구역은 같은 한남뉴타운에 속해 있는데도 각각 이태원동과 동빙고동에 있어 이번에 상한제 적용에서 빠졌다. 성동구에선 성수전략 1지구가, 송파구에선 마천 1·3·4구역 재개발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다.
국토교통부가 일부 정비사업장에 대해 분양가 상한제 적용까지 6개월의 유예기간을 허용했지만 사업 막바지 단계인 강동구 둔촌주공, 서초구 원베일리 등 몇 개 단지를 제외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상한제를 적용받으면 조합원 부담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가격이 약보합세를 보일 수 있다”며 “은마아파트 등 초기 재건축단지는 안전진단 강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에 분양가상한제까지 3중 규제로 투자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주변 시세의 절반 이하에 분양가를 책정할 수밖에 없는 단지도 나타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제도 시행으로 해당지역 3.3㎡당 평균 분양가가 지금보다 10~20% 이상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주택도시보증공사 기준을 적용받는 것보다 가격이 낮아지면 사업을 중단하는 곳이 상당수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상한제 칼날 피한 목동·흑석동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정부가 의도한 대로 서울 전체 집값을 끌어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선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이다.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 등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고려했을 때 가격조정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약광풍, 전세가 상승, 제외 지역 및 신축 등으로의 수요 쏠림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서울 집값 상승은 정비사업 규제가 심하고 다주택자 퇴로가 막혀 매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며 “분양가를 누르더라도 대기 수요로 웃돈이 붙기 때문에 서울 집값을 잡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소규모 재건축, 이미 지어진 주변 신축 아파트로 수요가 대거 이동하면서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핀셋 규제를 하는 것은 정책 효과를 반감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번 상한제 적용 대상에 대규모 재건축을 추진 중인 양천구 목동이나 재개발 대어가 몰려 있는 흑석동, ‘준서울’로 인식되는 경기 과천, 광명시 등이 빠진 것을 둘러싸고 뒷말도 무성하다.
벌써부터 성수전략정비구역에선 1구역만, 한남동 일대 재개발사업 중에선 3구역과 4구역만 포함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아현2구역 재개발조합 관계자는 “바로 옆 공덕1구역은 일반분양 물량이 500가구가 넘는데 제외됐고 일반분양이 50개밖에 안 되는 우리 구역은 포함됐다”며 “어떤 기준으로 이런 판단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재개발 전문가는 “후분양까지 강행하려고 했던 흑석동과 수도권 상승률 톱에 속하는 과천시가 제외됐다”며 “동부이촌동 목동 등으로 수요가 쏠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상시 모니터링 후 시장 불안을 유발한다고 판단되면 추가 지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조합은 7일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 혹은 2년 이상 장기유예 등을 건의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궐기대회 추진 등 단체 행동도 불사할 태세다. 강남권의 한 조합장은 “지금대로라면 앉아서 가구당 억원대의 손실을 본다”며 “내년 총선 등을 겨냥해 법개정 청원 활동에 나서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민경진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