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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청와대 회의실에서 종이 한 장을 받아든 문재인 대통령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보고한 자료의 제목은 ‘2050년 한국 인구 피라미드’. 65세 이상 노인이 39.8%, 14세 이하 유소년은 8.9%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1960년 피라미드 형태에서 90년 만에 아래위가 뒤바뀐 역피라미드로 변화하는 것이다.
수치로도 변화가 확연했다. 올해 175만 명인 80세 이상 인구가 745만 명으로 늘어나는 동안 20세 이하 인구는 300만 명 이상 감소해 617만 명으로 줄어든다. 90세 인구는 37만 명으로 30세 인구(2020년생)를 웃돈다. 회의에 참석했던 정부 관계자는 “쓴웃음을 지은 참모도 있었지만 한동안 긴 침묵이 흘렀다”고 전했다.
2006년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수립한 이후 지난해까지 쏟아부은 예산은 269조원. 그런데도 2006년 45만 명이던 신생아는 올해 30만 명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지난 8월 인구 자연증가분은 730명으로 인구 감소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2050년의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경북 의성·영덕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의성과 영덕의 노인 인구 비율은 지난해 각각 38.8%와 34.8%로 통계청이 전망한 2050년 한국과 비슷하다. 고령화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중학교 운동장은 밭으로 변하고, 대형 병원은 수년간 폐허로 방치되기도 했다. 전자제품 매장에선 대형 가전이 자취를 감췄다. 1인 가구 비율이 치솟으면서 원룸 월세가 강세를 나타내고, 방 3~4칸짜리 단독주택은 비어가는 등 자산시장의 변화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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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 밭으로 변하고
3~4칸 주택 안팔려…병원은 요양원으로학교 운동장 조회대가 있던 자리에는 비닐하우스 한 동이 들어서고, 운동장에선 고추가 자라고 있다. 1974년 문을 열어 한때 학생 수가 250여 명에 이르렀던 경북 의성군 신평중학교 모습이다. 학생 수 감소로 2007년 폐교된 운동장을 한 주민이 연 100만원에 임차해 농사를 짓고 있다. 인근 주민은 “중학교 유치를 위해 1974년 주민들이 조금씩 논을 기부해 조성한 학교 부지”라며 “4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농지가 됐다”고 말했다.
경북 영덕군에서는 군청과 읍사무소 인근 중심가 4층짜리 대형 건물이 2년여간 폐허로 방치됐다. 3년 전 영덕제일병원이 폐업한 곳이었다. 지난해 말 겨우 새 주인을 찾은 옛 건물터는 리모델링 끝에 지난달 노인 전문 요양병원으로 문을 열었다.
지자체 ‘인구 빼오기’ 경쟁1965년 21만 명을 웃돌던 의성 인구는 지난해 4만9621명으로 줄었다. 영덕 인구는 1967년 12만 명에서 지난해 3만8108명으로 감소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인구는 2030년에 정점(5193만 명)을 찍은 뒤 2050년 4774만 명으로 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고령화에 젊은 층 이탈이 겹치면서 농·어촌 지역의 인구 감소는 더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인구 감소는 교육과 의료 인프라에 직격탄을 날렸다. 2004년 의성군에서 유치원과 초·중·고교를 합친 학급 수는 359개였다. 하지만 현재는 202개로 줄었고, 같은 기간 경로당 수는 445개에서 485개로 늘었다. 소아과는 일찌감치 사라져 군청의 요청으로 내과 한 곳이 소아과 진료를 병행한다.
영덕제일병원 폐원으로 응급실을 연 영덕아산병원은 지난해 20억원의 손실을 봤다. 닥터헬기를 기증하는 등 정부와 영덕군의 총력 지원에도 경영 악화를 막지 못하고 있다. 영덕아산병원 관계자는 “아산재단이 아니었으면 진작 문을 닫았을 것”이라며 “사실상 공익사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성에서는 지난해 240명이 태어나는 동안 996명이 사망했다. 귀농·귀촌 정책이 효과를 보며 136가구가 순유입됐지만 출산과 사망의 격차를 막을 수 없었다. 지방자치단체는 출산 장려금을 경쟁적으로 올리고 있다. 의성은 태어나서 돌까지 270만원을 지급하는 가운데 인근 봉화군은 첫 아이 출산에 지원금을 600만원까지 인상했다. 유경래 의성군 인구정책계장은 “출산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세금을 들여 서로 신생아를 빼온다는 점에서 제 살 깎아먹기”라며 “신생아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장려금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비트렌드 변화전반적인 소비 감소 외에 소비트렌드 변화가 확연했다. 의성읍 내에서 만난 한 식당 주인은 “자영업자들이 단체로 우울증에 걸려 있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로 매년 고객이 줄어드는 환경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현상 유지가 버겁다”고 토로했다. 한 대형 전자매장에는 믹서와 헤어드라이어, 가스레인지, 밥솥 등이 판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TV와 세탁기, 냉장고 등 대형 가전은 한쪽으로 밀려났다. 매장 종업원은 “결혼하는 사람이 없고, 새로 집을 사 들어가는 이도 없다 보니 대형 가전은 수요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미장원과 중국음식점은 성업 중이다. 인구 1만 명 남짓의 의성읍내에 미장원은 35곳. 의성군청 앞길에 올해만 두 곳의 중국음식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미장원은 사랑방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한 미장원에서 만난 정춘선 할머니(74)는 “읍에서 멀리 사는 지인들도 한 달에 한 번 찾아와 머리를 깎고 짜장면도 시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짜장면은 노인들도 익숙한 맛인 데다 면과 소스가 부드럽게 넘어가 치아가 약해도 즐길 수 있다. 반면 노인들이 씹기 힘든 삼겹살과 갈비 등 고기류를 파는 식당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대도시 이상으로 1인용 주거시설 수요가 많다는 점도 주목됐다. 주택이 부족하다는 영덕읍에선 원룸에 월 30만~40만원의 높은 임대료가 매겨진 반면 3~4칸짜리 단독주택은 팔리지 않고 비어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영덕공인 관계자는 “사별과 이혼으로 혼자가 된 노인이 많기 때문”이라며 “다가구주택을 지어도 방을 하나씩만 지어 임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1인가구 비율은 영덕이 38.7%, 의성이 37.4%로 전국 평균(29.3%) 대비 10%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의성·영덕=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