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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기업에 성희롱 예방교육 의무화…부실 강의·엉터리 강사만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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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강사가 오히려 ‘펜스 룰(남녀 직장인 간 사적 접촉 금지)’을 조장하는 거 아닙니까.”

지난달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한 A사에서는 교육 직후 작은 논란이 일었다. 강사가 미혼 직원 간 데이트 신청과 식사 약속까지 성희롱 사례로 언급한 것이 문제가 됐다. 당장 여직원들 사이에 “직장생활이 더 어려워질 것” “강사는 회사 경험이 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성희롱 예방 교육은 직원 5인 이상 기업에 의무화돼 있다. 고용노동부 추산으로 전국에 10만 개가 넘는다. 이렇게 많은 기업이 대거 강의를 받아야 하다 보니 함량 미달 강사가 판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희롱 예방 교육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기업에 각종 교육 의무를 강화하자 부실 강의에 따른 불만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안 하느니 못한 기업 교육들

기업이 한 해 시행하는 각종 교육은 업무 특성에 따라 십여 가지에 이른다. 성희롱 예방 교육, 정보보호법 교육, 산업안전보건 교육,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교육, 금연·금주 교육 등이다. 이 중 성희롱 예방 교육과 정보보호법 교육 등은 법정 의무 교육으로 이행하지 않으면 최대 5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늘어나는 교육에 비해 강사 수준이 떨어져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B사에서는 “성희롱 예방 교육에서 성희롱을 당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교육 내용과 큰 관계가 없는 대목에서 남성이 여성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있는 사진이 게시된 것이다. 강사는 “교육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첨부한 것일 뿐”이라고 답해 지탄을 받았다.

잘못된 기업 교육이 사업 기회 상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올초 모 금융회사에서 법률컨설팅을 하다가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규정된 절차에 따라 소비자 동의를 받으면 활용할 수 있는 개인정보를 담당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지난해 있었던 정보보호법 교육에서 강사가 “절대 안 되는 사례”라고 했다는 것이다. 강사의 잘못된 설명으로 이 금융회사는 관련 서비스 준비가 6개월 이상 늦어졌다.

불가능한 것을 “된다”고 교육한 사례도 있었다. 한 중견 정보기술(IT)기업은 최근 서비스 개시 직전에 웹 사이트 내 개인정보 수집 관련 내용을 수정했다.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공지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것으로 사내 법무팀이 확인해서다. 역시 문제는 법정의무 교육에 있었다. 지난해 정보보호법 교육에서 서비스 준비팀의 해당 질의에 강사가 “가능하다”고 답한 것이다.


정부 강제가 부작용 불러

정부 규정에 따른 법정 교육이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정작 제대로 된 관리 시스템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사 자격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은 물론 교육 시간에 강사가 물건을 파는 등 교육 취지와 다른 행동을 해도 제재할 근거가 없다.

한 정보보호법 담당 변호사는 “제대로 교육하려면 법과 해당 기업의 정보보호 관련 이슈를 모두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개별 사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엉뚱한 대답을 하는 강사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갈등이 많아야 강의 수요도 늘어나는 만큼 교육 과정에서 일부러 문제를 부풀리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전문성이 부족한 강사들이 사후에 문제가 터질 것을 걱정해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무조건 “안 된다”고 답하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성희롱 예방 교육과 관련해 “교육 내용과 관련한 문제 지적이 많아 가이드라인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내년에 배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해부터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미이수에 대한 과태료 규정을 마련하는 등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정 의무 교육 분야는 기업 자율에 맡기고 자문이 필요하면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도록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한 노무사는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와 노무사들도 개별 기업의 특수성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워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마다 주안점을 둬야 할 포인트와 법적 이슈는 오히려 내부 직원이 필요한 내용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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