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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면역을 키워 癌 극복"…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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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병원에서 단독(丹毒)은 치명적이었다. 얼굴과 목에서 빨간 발진이 시작돼 온몸으로 번지고,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다 대개는 사망했다. 그런데 1885년 겨울, 31세의 페인트공 프레드 스타인은 달랐다. 왼쪽 뺨에 난 육종(악성 종양)을 수술하고 피부를 이식하다 단독이 생겼다. 열이 오르내렸고 오한에 시달렸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종양이 사라졌다.

28세의 젊은 의사 윌리엄 콜리는 기적 같은 이 환자의 사례에서 영감을 얻었다. “만일 단독을 인공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면 비슷한 환자들에게 그와 동일한 치유작용이 일어나지 않을까.” 콜리는 40년간 수백 명의 환자를 15가지 이상의 독소를 이용해 치료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그의 독소가 때때로 효과를 발휘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었고, 과학적 원리도 규명되지 않아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를 ‘입증되지 않은 암 치료법’이라고 규정했다. 사람들은 그의 치료를 돌팔이 의사의 사기 행각쯤으로 받아들였다.

<암치료의 혁신, 면역항암제가 온다>에서 저자는 콜리의 단독요법이 일부나마 과학적으로 해명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나서였다고 설명한다. 콜리는 당시 깨닫지 못했지만, 사실상 효과적인 항암면역요법을 개발해 암을 치료했던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의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콜리에서 시작된 항암면역요법의 발달사를 이 책에 담았다. 지금도 암이라고 하면 수술, 방사선 치료, 화학요법을 먼저 떠올린다. 저자의 표현대로 ‘잘라내고, 태우고, 중독시키는’ 방법으로 전체 암환자의 절반 정도를 완치시킬 수 있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나머지는 어떻게 할까.

저자는 인간 면역계의 작동 원리부터 항암면역요법의 발견과 발달 과정, 가능성과 한계, 풀어야 할 숙제까지를 드라마틱하게 풀어놨다. 콜리의 막연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면역치료법 연구에 일생을 바친 수많은 과학자와 의사의 도전과 실패, 환자들의 굳은 의지와 헌신은 암세포의 속임수를 밝혀내고 타고난 인체 면역기능을 이용해 암과 싸우게 한다는 아이디어가 구체적 현실로 구현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보여준다.

20세기에 와서 19세기의 콜리와 같은 영감을 얻은 이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재향군인병원의 스티븐 로젠버그 박사였다. 1957년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심한 세균 감염까지 된 환자가 12년 뒤 배가 아프다며 병원에 찾아왔던 것이다. 당시 의술로는 벌써 사망했어야 할 환자가 살아있는 것은 기적의 힘이 아니라 면역계의 힘이라고 로젠버그는 생각했다.

면역요법 연구에 매진한 로젠버그는 1985년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인체가 T세포를 대량으로 생산해 내도록 자극하는 인터루킨-2라는 약물을 개발해 주목할 만한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 면역계는 수지상(나뭇가지 모양) 세포와 대식세포로 구성된 선천성 면역계와, 한번도 맞닥뜨린 적 없는 침입자를 인식하고 살상하고 기억할 수 있는 후천성 면역계로 구성된다. 후천성 면역계는 B세포와 T세포로 구성되는데, 암을 공격해 완치시키는 데 중요한 것은 T세포다.

이런 T세포를 대량 증식한 로젠버그의 인터루킨-2 개발과정을 담은 논문은 ‘암 치료의 혁신적 돌파구(Breakthrough)’라는 제목의 포천지 특집기사로 보도되면서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개발 당사자인 로젠버그는 이것이 항암면역요법 개발의 시작에 불과하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지만 이미 세상은 암 극복의 새 시대가 열린 듯 반응했다. 1992년에는 FDA가 신장암 환자에 대한 인터루킨-2 사용을 처음으로 승인했다.

2011년에는 T세포의 중요한 비밀이 벗겨졌다. 면역세포가 정상세포를 공격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T세포에는 몇 가지 관문이 있는데, 제임스 앨리스라는 의사가 CTLA-4라는 분자가 이런 브레이크의 하나임을 밝혀냈다. 암세포가 이 브레이크를 장악해 면역반응을 차단하고 마음껏 증식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브레이크에 결합하는 약물(항체), 즉 면역관문억제제를 개발해 암세포가 이용하지 못하도록 차단하자 면역억제가 풀리면서 T세포가 다시 암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어 혼조 다스쿠를 비롯한 다른 연구자들은 T세포 표면에 있는 PD-1이라는 단백질, 암세포에 있는 항원인 PD-L1이 결합해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걸 밝혀내고 이를 차단하는 과정을 규명해 부작용이 더 적은 치료제 개발의 길을 열었다. 2015년 12월 두 번째로 개발된 면역관문억제제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간과 뇌에 퍼져 있던 암세포를 깨끗이 쓸어냈고, 당시 91세의 카터는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책의 원제는 돌파구라는 뜻의 ‘The Breakthrough’다. 하지만 저자는 면역항암요법이 만병통치약이라거나 기적의 치료제라고 과장하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높은 비용도 해결해야 과제라고 지적한다. 어려운 의학용어와 개념, 연구개발 과정을 쉬운 언어와 절묘한 비유로 풀어낸 저자의 솜씨가 탁월하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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