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과의 무역분쟁에선 1단계 합의라도 이뤘지만 유럽연합(EU)과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전쟁을 벌일 태세다. 손봐야 할 우선순위가 중국이지 EU에 불만이 없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간 중국뿐 아니라 EU에 대해서도 불공정 무역을 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작년 4월 ‘국가 안보’를 이유로 EU산 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매긴 뒤 양측 갈등은 본격화됐다. 작년 7월 트럼프 대통령과 당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협상 시작에 합의하면서 갈등은 일단 물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아직도 진전이 없는 상태다. EU가 미국이 요구하는 농산물 시장 개방에 대해 “협상 대상이 아니다”며 거부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미국이 지난 18일부터 항공기와 와인, 위스키, 치즈 등 농산물 75억달러 상당의 EU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에어버스 보조금에 대한 EU의 책임을 인정한 데 따른 조치다. EU는 내년 상반기 보잉에 대한 보조금 제소 판정이 나오면 보복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지난 7월 프랑스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미국 정보기술(IT)기업에 디지털세를 매기기로 한 것도 갈등 요인이다. 미국과 프랑스는 8월 말 국제 과세 기준이 나오면 그에 맞춰 세금을 되돌려주기로 합의하며 일단 봉합했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수입차·부품에 대한 관세다. 미국은 5월 수입차와 부품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부과 결정을 6개월 뒤로 미뤘다. 그 시한이 다음달 13일로 끝난다.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 멕시코 등과는 협상을 통해 문제 소지를 없앴지만 EU에 대해선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2일 “EU와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차량에 25%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가 “농담”이라고 말을 거둔 적이 있다. 하지만 월가는 ‘농담’이 아닐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윤제성 뉴욕생명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내건 공약을 모두 지키고 있다”며 “중국과 합의가 되면 예고한 것처럼 유럽과 또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수입차 관세를 현실화하면 유럽은 독일 자동차 업계뿐 아니라 이탈리아부터 동유럽 등에 걸쳐 있는 자동차 공급망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EU는 자동차 관세가 부과되면 350억유로의 미국산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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