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가입자 수에 연연하기보다 차별화된 기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 회장은 지난 22일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취리히연방공대(ETH)에서 특별강연을 한 뒤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취리히연방공대 초청으로 400여 명의 석·박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5G, 번영을 위한 혁신’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취리히연방공대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빌헬름 뢴트겐, 폰 노이만 등 세계적인 과학자를 배출한 학교다. 황 회장은 이번 강연이 KT 회장으로서 마지막 강연이라고 했다. 2014년 취임한 그는 2017년 3월 연임에 성공했고, 내년 3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
황 회장은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장 시절 ‘메모리 용량은 1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을 제시하며 반도체산업 혁신을 이끌었다. 그가 KT 회장에 취임한 이후 붙여진 별명은 ‘미스터(Mr) 5G’.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스위스 다보스포럼 등 각종 글로벌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5G의 미래를 선도적으로 설파했다.
황 회장은 이날 특별강연에서도 원격의료와 자율주행, 인공지능(AI), 산업 현장의 안전사고 예방 등 다양한 5G 기술 적용 사례를 소개했다. 강연 도중엔 5G에 가입한 학생이 있는지 물어봤다. 400여 명의 학생 중 손을 든 학생은 한 명뿐이었다.
그는 “KT가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이후 한국 내 가입자는 400만 명에 육박한다”며 “연말까지 500만 명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강의장 곳곳에선 학생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강연이 끝난 뒤 황 회장에게 질문하기 위해 수십 명의 학생이 앞다퉈 손을 들기도 했다.
그는 강연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5G 사례처럼 10년 뒤의 미래 트렌드를 파악해 기술 차별화에 성공했을 때 가장 큰 기회가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5G 사업은 가입자 수에 연연하기보다 차별화한 기술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것이 황 회장의 지론이다. 5G 네트워크뿐 아니라 장비 분야에서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기술 경쟁력을 시급히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세계 5G 장비 점유율 37%로 1위다. 전체 통신장비 시장점유율 1위인 화웨이는 5G 분야에선 28%로 2위다. 그는 “화웨이는 중국의 많은 인구를 앞세워 5G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며 “한국 업체가 기술 경쟁력을 차별화하지 못하면 5G 통신장비 분야에서도 중국 업체에 우위를 뺏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은 “KT는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등을 모두 아우르는 AI 회사가 돼야 한다”며 “남은 임기 동안 5G 안착을 위한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퇴임 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젊은 인재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들을 위해 무료 강연을 하는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차기 KT 회장 공모에 대해선 언급을 삼갔다. KT 새 노조가 주장하는 불법정치자금 제공 및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선 “전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거리낌이 없다”고 강조했다.
취리히=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