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로 인해 젠더 갈등이 커지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논쟁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의식을 나누고 싶어서 만든 거니까요.”
조남주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정유미(사진)의 소감이다. 성차별 이슈로 벌써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 작품은 오는 23일 개봉을 앞두고 예매율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결혼과 출산 후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자신도 몰랐던 아픔으로 고뇌하는 김지영 역을 맡은 정유미를 16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 작품을 둘러싼 젠더 이슈가 이 정도로 클 줄은 몰랐어요. 너무 엄청나니까 촬영할 때는 오히려 현실감이 없어졌어요. 이전에 이만큼 이슈가 된 적이 있었나 싶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제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이야기였어요. 출연을 결정한 뒤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스케줄대로 촬영했습니다.”
영화는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인 주인공이 까닭 모를 허전함과 공허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고뇌가 깊어진 순간, 그는 다른 사람으로 빙의해 속내를 얘기한다. 일종의 해리성 장애 증상인데, 영화는 이 문제를 깊이 파지 않는다. 이런 증세는 자아를 상실해가는 김지영의 고민과 갈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개인의 욕망이 사회적 억압에 봉착했을 때 자아를 벗어나 출구를 찾아내려는 데서 오는 부작용이다.
“영화는 소설과 결이 비슷하지만 결말이 보다 희망적입니다. 소설처럼 끝난다면 더 힘들 거예요. 감독님 말씀처럼 지영이와 그의 딸이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반영한 듯싶습니다.”
극 중 김지영은 남편(공유 분)의 외조에 힘입어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다.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와 내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김지영이 카페에서 아기 때문에 커피를 엎지르자 줄 서 있던 남자가 “맘충”이라고 얘기하는 대목을 꼽았다. 김지영은 모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뭘 안다고 함부로 말씀하는지”라고 따진다. 영화는 하고 싶은 말을 더 이상 삼키지 않는 것을 정신질환을 극복하는 첫걸음으로 제시한다.
정유미는 ‘도가니’ ‘부산행’에 이어 공유와 세 번째 호흡을 함께했다.
“이번 영화에서 실제로 함께 촬영한 장면은 별로 없어요. 별개의 장면에서 많이 나오니까요. 작품을 함께한다고 항상 친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공유 씨는 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입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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