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한 일반고 2학년 학생인 K양(17)은 지난해 문·이과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이과를 선택했다. 이과생이 대학 진학에 유리하고 취업도 잘된다는 소문에 선택 당시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학기째 과학 등 이과 과목을 공부해온 K양은 이과반에 지원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과학과 수학에 관심이 없는 데다 성적 역시 낮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장래 희망도 문과 계열에 가까운 마케팅 관련 일이라는 K양은 “3학년으로 올라갈 때 문과로의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취업난에 대한 공포로 한동안 크게 늘던 이과 학생이 최근 다시 줄어들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올 11월에 치를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수학 가형(이과 수학)’을 선택한 학생 비율은 32.1%로 33.1%의 학생이 응시했던 지난해 수능보다 1%포인트 낮다. 2017학년도(34.1%)를 기점으로 3년 연속 줄어드는 추세다.
과학탐구 영역 선택 비율 역시 줄어들고 있다. 수능에서 탐구과목(사회·과학·직업)을 치르는 학생 가운데 과학탐구를 선택한 학생은 올해 44.1%다. 지난해 수능의 과학탐구 응시자 비율(47.1%)보다 3%포인트나 감소했다. 47.3%였던 2018학년도 이후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인문계열을 기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에 ‘이과 붐’이 일었지만 적성과 흥미를 고려하지 않은 맹목적인 이과 선택에 대한 회의감이 퍼져 이과 학생이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중학교 교육과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학생에겐 수학·과학 과목의 학업 장벽이 결코 낮지 않다”며 “막상 이과 가봤더니 더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고3때까지 이과였다가 올해 재수를 시작하면서 문과로 전과했다는 김모씨(20)는 “고교 시절 수학을 조금만 잘하면 이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학교 전체에 팽배했다”면서 “막상 이과 공부를 해보니 좋은 성적을 받기 쉽지 않았고, 꿈도 공무원으로 바뀌어 문과로 전향했다”고 전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은 “수시 비율이 높아지면서 수능에 대한 학생들의 집중도가 낮아진 게 현실”이라며 “하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능은 포기하고 내신이라도 잘 따자는 분위기에 이과 학생이 줄어들었을 수 있다”고 했다.
이과생 감소는 과학기술 인재양성을 두고 치열한 글로벌 경쟁이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뼈아픈 현상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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