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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인물] 유관순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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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인물] 유관순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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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을 대표하는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는 1915년 서울 이화학당 보통과에 들어간 뒤 1918년 같은 학교 고등과로 진학했다.

    1919년 3·1운동 하루 전날 유 열사는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 학생들과 시위 결사대를 조직했다. 닷새 뒤인 3월 5일 약 1만 명의 시민이 모인 남대문역(서울역) 광장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휴교령으로 학교가 문을 닫자 사촌언니인 유예도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 고향 천안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이어갔다.


    같은 해 4월 1일, 유 열사는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장터에서 밤새 만든 태극기를 나눠주는 등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투옥됐다. 3000여 명이 참여한 이날 만세운동에서 유 열사의 부모를 포함해 19명이 순국했다.

    1920년 유 열사는 3·1운동 1주년을 맞아 수감 중인 동지들과 함께 대대적인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일제의 모진 고문에 시달린 그는 같은 해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했다. 정부는 유 열사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했다. 지난 3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는 최고 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추가 서훈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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