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엔군사령부의 ‘재활성화(revitalization)’와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유엔사의 존재 이유는 평시 한반도 정전체제의 안정을 유지하고, 전시에는 외교 경로로 유엔사와 유엔 회원국들이 제공하는 병력과 물자를 확보해 연합작전 수행을 지원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유엔사는 참모조직을 보강하고 미래 연합군사령부와의 상호관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유엔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인 미국 육군의 로버트 에이브럼스 대장이 겸직하고 있다. 미국군이 맡았던 부사령관은 작년 7월부터 웨인 에어 캐나다 육군 중장에 이어 스튜어트 마이어 호주 해군 소장이 맡고 있다. 참모장 은 마크 질레트 미국 육군 소장이다. 전체 참모부는 한국·미국·회원국 군인들을 적정 비율로 편성해 제3국의 비중을 과반수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엔사를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그리고 한·미 동맹을 남북관계의 종속 변수로 간주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정치·사회 심리로 말미암아 유엔사령관(미국 측 대장)과 미래 연합사령관(한국 측 대장)의 지휘관계 설정 문제도 표류하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말하는 ‘대중 영합적 민족주의’의 산물로 우려된다. 더욱이 국가 안보 문제를 사회주의적 ‘정체성’과 역사적 소외 의식으로 빚어진 ‘분노의 정치’로 접근해선 안 될 일이다.
한·미 국방장관은 작년 11월 워싱턴DC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지침’에 합의했다. 이 지침의 목적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정신을 계승해 한반도 무력분쟁 방지, 동북아 평화·안정 증진,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데 있다. 이 지침은 양국 국방부가 유엔사를 유지·지원하며, 유엔사와 한국합참·연합사·주한미군사의 상호관계 발전을 명시하고 있다.
본래 연합사령관과 유엔사령관은 서로 협조·지원하는 관계다. 한·미는 ‘방어준비태세(DEFCON)’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지금 한반도는 데프콘4 상태다. 만일 북한이 전쟁을 위협하면 우리는 정전체제의 위기관리와 전시전환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데프콘3→2→1 순으로 태세를 조정하면서 전쟁 억제 노력과 전쟁 준비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 전쟁 준비 활동은 곧 전쟁 억제와 승리를 달성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다양한 상황의 요구에 맞춰 유엔사령관이 주도하고 연합사령관이 지원하는 경우, 또는 연합사령관이 주도하고 유엔사령관이 지원하는 경우의 수가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미래 연합사령관은 전쟁 준비·수행에 필요한 전력들이 적시에 제공되도록 유엔사령관에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한국군 대장은 주도적 지위, 미국군 대장은 지원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처럼 유엔사령관과 연합사령관 사이 ‘주도(supported)와 지원(supporting)’의 역할 분담은 필수불가결하다. 한국과 미국군 교범 공히 가장 느슨한 지휘관계로서 ‘주도와 지원’을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한반도 정전체제에서 전쟁 선포 전 단계까지 선택적으로 적용해야 할 유엔사령관의 주도적 역할과 재활성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연합방위체제는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이 문제에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옛말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국적 기구인 유엔사는 한·미 동맹의 탁월한 안보기제다. 한반도 평화는 물론 중국의 도전을 견제하면서 동북아 전략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우리 혼자 힘으로는 버거운 북한에 대한 ‘강압 외교’와 주변국 관계도 미국과 합심해야 효과적이다. 우리 정부와 군이 대한민국 안보의 ‘정체성’을 오롯이 세우고 ‘용미(用美)’의 지혜를 발휘해 유엔사의 재활성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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