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3개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가 WTO의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7월 4일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지 69일 만에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반도체·디스플레이 부문 3개 품목에 대해 한국을 특정해 포괄허가를 개별허가로 전환한 것은 WTO 협정의 차별 금지 및 최혜국 대우 의무 위반”이라며 “정치적 목적으로 교역을 악용하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일본 정부(주제네바 일본대사관)와 WTO 사무국에 양자협의 요청 서한(제소장)을 발송했다. 일본이 요청에 응하면 60일간 합의를 시도하지만 합의가 불발하면 1심 절차에 들어간다. 일본이 “수출규제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수출관리를 개선한 조치일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3년 이상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수출규제 철회와 같은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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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국 대우 등 위반…수출규제 정치에 악용"
日 상소 땐 장기화 가능성…수산물 분쟁도 4년 걸려
정부는 일본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제1조 최혜국 대우와 11조 수량제한의 일반적 폐지, 10조 무역규칙의 공표 및 시행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혜국 대우는 제3국에 부여하는 권리와 이익을 상대국에도 동일하게 부여해야 하는 조치다. 일본이 기존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에만 반도체 소재 등의 수출을 규제한 것은 최혜국 대우를 위배한 것이란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수량제한의 일반적 폐지는 수출입에서 할당제나 수출입 허가를 통해 수량을 제한할 수 없는 규정이다.
정부가 11일 일본을 WTO에 제소하면서 일본에 양자 협의를 요청, 공식적인 분쟁해결 절차가 시작됐다. 한·일 간 협의 기한은 요청 후 30일 이내다. 정부는 합의가 불발될 것에 대비해 WTO 내 패널(분쟁해결기구) 설치를 요청할 준비도 하고 있다.
패널의 심리는 분쟁 당사국과 제3국이 참여한 가운데 3~9개월 내 완료하는 게 원칙이다. 심리가 끝나면 패널보고서가 작성돼 WTO 전체 회원국에 회람된다. 한·일 양국이 찬성하면 해결안에 대한 이행 절차를 밟게 되지만, 두 나라 중 한 곳이 반대하면 상소할 수도 있다. 그럼 3년 이상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한·일 수산물 분쟁의 경우 최종 결론까지 4년이 걸렸다.
이번 한국 정부의 WTO 제소는 반도체 관련 소재 3개 품목 규제만이 대상이다.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된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는 빠졌다.
WTO 상소기구는 이날 한국이 일본산 공기압 밸브에 관세를 부과한 조치에 대해 “WTO 협정 위배성이 대부분 입증되지 않았다”며 한국 손을 들어줬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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