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는 지난 4일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세부 방안을 마련하고 부처 간 협의를 거친 뒤 벤처기업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전향적이다. 최운열 의원은 지난해 법안을 발의해놨다. 당정이 제2의 벤처붐을 일으켜 혁신성장을 도모하겠다고 한다.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방침이다. 최 의원 발의 법안에는 주당 10표의 의결권을 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도입된다면 ‘1주 1표’의 의결권 주식만 고수해온 국내 자본시장에 새로운 한 획을 긋게 된다.
지나친 부작용부터 예단해서야
실질적인 최종 관문은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일 공산이 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제4의 권력’으로 부상한 그들이다. 종전처럼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차등의결권 도입을 한목소리로 반대하며 장벽을 치고 있다. 경제활력 촉진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대기업이 악용할 것으로 우려한다. 창업 대주주가 비상장 벤처기업을 설립해 경영권을 세습하고, 지배권을 더 강화하면 경영 전횡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단한다.
기업들은 차등의결권 도입을 절박하게 촉구해왔다. ‘배달의민족’ 서비스로 잘 알려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우아한형제들의 창업자 김봉진 대표의 말이다. “스타트업은 외부 투자를 끌어오는 과정에서 창업자 지분율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 경영권 방어에 힘을 빼면 혁신역량 저하가 불가피하다.”
창업 대주주가 차등의결권 주식을 보유하면 단기차익을 노린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등의 경영권 위협,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2003년 SK그룹은 소버린펀드에 경영권 위협을 받았다. 차등의결권 도입 필요성을 상장기업에 각인시켰다. 0.1%의 잠재 위험에도 대비하는 것은 기업의 속성이다.
어느 기업이든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 경영을 한다. 차등의결권은 장기적인 혁신성장과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하나의 안전장치가 된다.
대기업이 된 구글도 포기 안해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이를 굳게 믿었다. 두 사람은 주당 10표의 의결권을 갖는 주식(클래스 B)을 보유했다. 투자자에게는 주당 1표의 주식(클래스 A)을 발행해주며 기업을 공개했다. 차등의결권을 ‘두 창립자의 승인 없이는 누구도 구글을 인수하지 못하고, 투자자가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만들어 외부 간섭 없이 회사를 운영할 권한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한 것이다’(<구글 스토리> 데이비드 바이스·마크 맬시드 지음).
‘투자의 현인’ 워런 버핏은 외부적으론 차등의결권 반대를 주장한다. 막상 자신의 지주회사 벅셔해서웨이는 보통주보다 의결권이 1만 배 많은 주식을 통해 지배하고 있다. 경영권 보호용 차등의결권의 실효성을 이보다 잘 웅변해주는 실례는 없다.
중국 알리바바는 차등의결권이 보장된 미국 나스닥을 찾아 기업을 공개했다. 충격받은 중국 정부가 차등의결권 도입을 확정한 이유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들의 주가 상승률(2007년 11월~2017년 8월)이 시장 평균을 웃돌았다고 분석했다.
스타트업 등 비상장 벤처는 글로벌 대기업을 꿈꾼다. 구글과 알리바바가 상장했다고, 대기업이 됐다고 차등의결권을 폐기했다는 소식은 못 들었다. 차등의결권이라면 무작정 반대하는 시민단체들도 전향할 때다.
com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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