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동네병원에서 간암 진단을 받은 A씨는 수술을 받기 위해 대학병원으로 옮겼지만 아직 수술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예약환자가 많아 대학병원 진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 데다 검사, 수술 등이 줄줄이 밀려 있어서다. A씨는 “병원에서 수술이 예정된 환자가 빠지면 연락을 주기로 해 기다리고 있다”며 “병원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암이 더 퍼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올해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B씨도 마찬가지다. 암 진단 후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기까지 한 달 넘게 기다렸다. 환자가 몰리면서 검사량이 폭증해 날짜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수술도 늦어졌다. 이 병원 관계자는 “검사 건수가 크게 늘면서 밤 시간까지 기기를 돌려도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4일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 대책을 내놓은 것은 환자 쏠림 문제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42개 대형 대학병원(상급종합병원)의 건강보험 진료비 수익은 13조5000억원이다.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27.7%다. 2008년 점유율이 24.6%였던 것을 고려하면 10년 새 3.1%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3만1718개 동네의원의 진료비 점유율은 37.5%에서 31.4%로 6.1%포인트 떨어졌다. 큰 병원을 선호하는 현상이 심해졌다는 의미다.
의료계에서는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포함하는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면서 환자쏠림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선택진료비가 없어지고 각종 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혜택이 늘면서 대형병원 문턱이 낮아져 암 등 중증질환이 아니라 비교적 가벼운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도 대형 대학병원으로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형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면서 중증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보건행정학회에 따르면 국내 대형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는 수술까지 대개 2~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몰리는 환자 때문에 의사는 제대로 진료를 못해 대학병원 평균 진료 시간은 4.2분에 불과하다.
의료쏠림은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로도 이어진다. 동네의원에서 간단히 진료받을 수 있는 환자가 대학병원을 가면 더 비싼 진료비를 내야 한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환자 유치 경쟁을 위해 시설에 과잉투자한 병원이 수익 보전을 위해 과잉진료하는 악순환도 계속되고 있다. 국내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2.3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7개)의 세 배에 이른다. 100만 명당 MRI는 29.1대로 OECD 평균(17.4대)보다 높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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