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군대 같은, 상명하복, 수직적인…. 과거 현대·기아자동차의 조직문화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였다. 이런 현대·기아차가 달라졌다. 다른 어느 기업보다 빠르게 조직문화를 개혁하고 있다. 다른 대기업의 인사 및 조직 담당자들이 현대·기아차의 발빠른 변화를 벤치마킹하겠다고 문의할 정도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9월 그룹 경영을 총괄한 이후 약 1년 만에 생긴 변화다. “현대차그룹이 정보기술(IT)기업보다 더 IT기업처럼 바뀌어야 한다”는 정 수석부회장의 주문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달부터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새 인사제도를 시행한다고 2일 발표했다. 새 인사제도의 핵심은 일반직 직원 직급을 6단계에서 4단계로 줄인 것이다. 기존에는 △5급사원 △4급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6개 직급으로 나눠졌다. 이번에 5급사원과 4급사원을 합쳐 G1 직급을 만들었다. 또 차장과 부장을 G4 직급으로 합쳤다. 대리와 과장은 각각 G2, G3 직급으로 이름을 바꿨다.
호칭 체계도 단순화했다. 5급사원부터 대리까지를 매니저, 과장 이상을 책임매니저라고 부르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나누고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직급과 호칭을 단순하게 바꿨다”며 “이번 인사제도 개편으로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지고 업무효율성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승진연차 제도도 폐지된다. 기존에는 한 단계 승진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야 했다. 대리와 과장으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각각 4년을 기다려야 했다. 차장과 부장,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5년을 기존 직급에 머물러야 했다.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려면 최소 23년이 걸린다는 의미다. 앞으로는 승진 이듬해가 되면 승진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계산상으로는 신입사원이 8년 만에 임원이 될 수 있다”며 “나이나 연차에 상관없이 능력이 있으면 빨리 승진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LG 등 다른 기업들은 아직 승진연차 제도가 남아 있다.
평가 방식도 바뀌었다.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꿨다. 기존 상대평가가 부서별, 직급별 형평성을 해친다는 지적 때문이다. 상대평가 제도는 부서마다 하위 등급(C 또는 D)을 의무적으로 할당해야 했다. 현대·기아차는 절대평가제도를 도입하면서 더 공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제도 개편은 지난 4월 시행된 임원 인사제도 개편의 연장선상에 있다. 현대·기아차는 당시 이사대우와 이사, 상무를 상무로 통합해 사장 이하 6단계 직급을 4단계로 조정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승진연차 폐지 등은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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