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지난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내리면서 대북(對北) 군사감시 전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소미아 체결 이후 일본과 직접 교환한 정보는 총 29건이다. 이 중에는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건수도 포함돼 있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북한의 핵·미사일과 관련한 동향 및 분석 정보를 얻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미국을 거쳐야 한다. 그마저도 일본이 동의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지소미아 파기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지소미아는 군사기밀 공유 ‘인프라’한·일 양국 간 군사 기밀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한 지소미아에는 교환할 기밀의 등급과 제공 방법, 보호 원칙, 정보 열람권자 범위, 파기 방법 등이 규정돼 있다. 정보 교환의 ‘인프라’로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정보 교환 횟수가 적더라도 유사시 신속한 정보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군이 갖고 있는 정보자산은 남쪽을 향한 공격에 대비하도록 최적화돼 있다. 북에서 남쪽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에 대해선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의 초기 발사 시점과 고도에 대한 정보는 한국 자체 분석으로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동해상으로 쏘는 미사일에 대해선 분석력이 부족하다. 지구의 곡률 때문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합동참모본부에서 ‘미상의 발사체’라고 표현하는 건 즉각적인 분석이 어려워서다. 정밀 분석을 위해선 동해상까지 커버할 수 있는 미국과 일본의 정보자산이 필요하다. 일본은 적외선영상(ISR) 위성 7기와 1000㎞ 밖의 탄도미사일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를 탑재한 이지스함 6척, 탐지거리 1000㎞ 이상 지상 레이더 4기, 공중조기경보기 17대, P-3와 P-1 등 해상초계기 70여 대 등 다양한 정보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 2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과거 핵실험을 했을 경우 등 우리가 캐치하지 못한 정보를 받은 적도 있다”며 “하나하나를 갖고 우리가 유리하다, 저쪽이 유리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답변한 것에서도 일본의 정보력을 엿볼 수 있다.
미국 정보만으로는 ‘한계’지소미아 파기로 예상되는 가장 뼈아픈 타격은 미국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는 데 제약이 생긴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지소미아가 종료되더라도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티사)이 있기 때문에 정보 공백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을 거쳐야 하는 티사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정보 중에는 일본이 직접 만들거나 관여한 것도 적지 않다. 지소미아가 파기되면 미국은 이 같은 정보를 배제한 채 미국이 자체적으로 생산한 정보만 제공하게 된다. 일본이 정보원인 정보를 공유받으려면 일본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한국이 지소미아 연장을 거부한 상황에서 일본이 동의해 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적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정보는 많을수록 좋고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기 마련이라 미국이 북한 정보수집에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도 필요한 정보의 10분의 1도 제때 수집하기 어렵다”며 “수조원에 달하는 일본 위성 7대가 수집한 영상 신호정보를 돈 한 푼 안 들이고 공짜로 이용할 권리를 제 발로 걷어차 버렸다”고 지적했다.
지소미아 파기로 인해 생기는 정보 공백을 한국이 스스로 메우는 데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갈 전망이다. 국방부는 지난 14일 향후 5년간 290조원이 넘는 국방비를 투입한다는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이지스함, 중장거리 레이더, 전략 인공위성 확보 등에 수조원의 예산을 책정해놨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