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0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중 31개사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 힘들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규제 장벽이 원인이다. 18개사는 사업에 상당한 제약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예 사업이 불가능한 기업도 13개사에 달했다.
20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 참가자들은 스타트업 육성의 최대 걸림돌이 규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행사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아산나눔재단,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주체 기관들이 내놓은 정책 제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스타트업은 지난 5년간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벤처인증 법인은 3만7000곳이다. 이 가운데 매출 1000억원이 넘는 기업이 572곳에 달했다. 기업 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은 9곳으로 지난해 12월에 비해 3곳 늘었다. 세계적으로는 미국 중국 등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유니콘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경영 여건을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유니콘 스타트업을 보유한 주요 10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항목은 ‘진입 규제’다. 10개국 중 9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데이터 인프라 환경’ ‘인재 유입 환경’ 등에서도 8위에 그쳤다. 유니콘 기업 가운데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으로 자금 회수에 성공한 사례도 아직 없다.
국내 스타트업의 최대 애로사항은 규제다. 한국은 글로벌 누적 투자액 기준 100대 스타트업 중 31%가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규제가 촘촘하다. 투자액 기준으로 따지면 이 비율이 53%까지 올라간다. 유니콘 기업 중 하나인 그랩이 대표적이다. 동남아시아 시장을 장악한 차량공유 업체지만 국내에서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막혀 사업이 불가능하다.
보고서는 새로운 산업엔 ‘우선 허용, 사후 규제 방식’의 포괄적 네거티브 체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기업에 한시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만으론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영세한 스타트업의 여건을 감안해 규제 영향 평가와 유권해석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상협 구글 스타트업캠퍼스 한국총괄은 “미국과 중국, 영국, 일본 등에선 원격으로 진료와 모니터링, 조제 등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원격 협진만 허용한다”며 “한국에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드문 것은 전적으로 규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이 자유롭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데이터 규제 때문에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등장하지 못한다는 논리다.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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