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조선산업은 1990년대 확장기를 거쳐 2000년부터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세계 선박 건조량의 35% 정도를 차지해 왔다. 글로벌 경기 활황세에 따라 2007년 세계에서 발주된 선박은 9200만CGT(실질적인 작업량의 크기, 한국 수주량은 약 3200만CGT)에 달했다. 이후 해운시장은 초과공급으로 어려움에 직면했고, 급기야 2016년 세계 선박 건조량은 1340만CGT로 위축됐다. 한국의 수주량은 200만CGT에 머물러 유례없는 ‘수주절벽’에 흔들렸다.
그러던 세계 선박 건조량이 서서히 회복세를 타 2017년 2813만CGT, 2018년 2860만CGT로 늘었다. 한국의 수주량도 2018년 1300만CGT로 올라섰다. 그러나 아직 평균 수준인 3000만CGT에는 한참 못 미친다. 2007년 초 호황기와 비교하면 극도의 불황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업의 선행산업은 해운업이다. 해운에서 수요가 발생해 선박을 발주해야 조선업이 돌아간다. 그러나 선박을 많이 건조하는 게 대수는 아니다. 선박을 지나치게 많이 발주하면 화물운송 시장에 선박공급이 늘어 운임이 떨어지고 당연히 선가도 낮아지게 된다. 그럼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선박을 건조하던 선박회사는 건조 중인 선박을 인수하지 않으려고 하고 은행빚도 갚지 못하게 되며, 발주자인 선주 역시 금융채권자에게 선박 건조자금을 갚지 못해 도산하게 된다. 조선경기는 해운경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으며, 조선과 해운은 상생(相生) 관계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해운과 조선산업은 상생의 고리가 강하지 않아 위기 시 불안감을 키웠던 게 사실이다. 우리 조선산업의 주 고객은 유럽 선사들이다. 국내 선주들의 건조 수요는 10%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업이 수출 주도 산업이 된 까닭이다.
일본은 좀 다르다. 자국 선주가 발주하는 선박 건조량이 70%에 이른다. 더구나 일본은 최전성기인 1980년대 세계 1위였던 선박건조 능력을 2분의 1로 줄인 상태다. 자연히 내수 비중이 더 커져 조선산업의 안정성도 높아졌다. 세계 3위 조선소인 이마바리 조선소의 경우 쇼에이기센(正榮汽船)이란 선주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쇼에이기센은 해운사로부터 신조(新造) 주문을 받아 이마바리 조선소에 건조를 의뢰하는데 이런 구조는 불황기의 안전장치로서 큰 역할을 한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 조선소들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은 반면 일본 조선업은 크게 흔들리지 않은 것은 조선산업의 이런 구조적 차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해외무역에 의존하는 한국은 해상운송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무역을 해야 하는 한 화물을 운송할 선박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조선산업을 하기에 좋은 국가다. 조선산업의 안정성을 높이려면 해운산업과 연동되도록 해야 한다.
세계 연간 선박건조량을 3000만CGT로 낮춰 보고, 한국이 그중 33%를 건조한다면 연간 1000만CGT를 건조해야 한다.
2만CGT급 선박이면 연간 500척이다. 내수의 비중을 50% 정도로 올린다면 약 500만CGT(2만CGT급 250척)를 우리 선주들이 발주해줘야 한다. 2018년 현재 우리 선주들이 운영하는 선대는 1100척, 약 2500만CGT다. 2018년 발주량은 약 260만CGT다. 그러므로 내주 비중을 50% 정도로 만들려면 해운 규모를 현재보다 2배는 더 키워야 한다.
화물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선주들이 선박을 건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선박을 소유만 하고 외국선사에 빌려주는 역할을 하는 선주사가 생기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본 이마바리 조선소의 쇼에이기센과 같은 조선소 계열 선주사는 수주절벽 상황에서도 대형 화주와의 장기 용선계약을 발판으로 건조물량을 만들어낼 수 있으므로 완충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산업구조가 짜이면 우리 조선업도 더 안정적인 경영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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