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소신껏 살자’가 소신이다”
동사 ‘잘하다’에는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는 ‘옳고 바르게 하다’이고, 둘째는 ‘좋고 훌륭하게 하다’이다. 둘 모두 듣는 이에게 긍정을 전달하지만, 어느 쪽이 더 가깝게 다가오고 또 많이 쓰이는지 생각해보면 아마도 후자가 더 잦은 빈도로 대중의 말과 글에 녹아들지 않을까. 옳고 바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면의 긍정을 다룬다면, 좋고 훌륭한 것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때로는 느낄 수 있는 것의 긍정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초점을 연기에 맞추자면, 김윤석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1988년 한 편의 연극이 본격적 연기 생활의 시작으로 기록되고 있는 그는 2017년 배우로서 데뷔 29주년을 맞았다. ‘잘하다’는 ‘능통하다’로 대체될 수 있을 테다. 연기에 능통한 그에게 장르와 연기의 상관 관계를 물었다. “장르와 연기를 구분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장르를 정하는 것은 관객이다. 배우라면 장르를 상정하고 연기하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는 장르와 연기의 연관을 거부했다. 틀에 배우를 끼워 맞추는 것도 답이 될 수 있지만, 자신은 연기를 할 뿐 그것을 선택하고 평가하고 규정하는 일은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 것. 그간 김윤석은 배역이 가지고 있는 힘과 더불어 ‘김윤석으로서’ 큰 존재감을 발휘해왔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연기를 하나의 객체로 남겨두려는 한 배우의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연기에 주관을 투영한 김윤석을 9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에서 김윤석은 예조판서 김상헌 역으로 생애 첫 사극에 도전했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 남한산성 속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청(淸)과의 화친을 통해 공존을 모색하자는 주화(主和)파 이조판서 최명길과 달리 줄곧 결사항전을 강조하는 척화(斥和)파 예조판서 김상헌의 주장은 시쳇말을 빌리자면 관객에게 고구마를 전달한다.
“명분과 실리를 놓고 봤을 때 그쪽에서 보면 이쪽이 명분이고, 이쪽에서 보면 그쪽이 명분이다. 최명길이든 김상헌이든 모두가 본인이 실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불어 김윤석은 “김상헌은 막연한 인물이 아니다. 서날쇠(고수)를 만나 실질적 도움을 얻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구체적 작전을 내부적으로 세우는 인물이다”라는 말로 주화파 최명길에 감정을 이입한 나머지 관객이 놓칠 수 있는 김상헌의 기능을 설명했다. 실제로 김상헌은 영의정 김류(송영창)처럼 입만 떠벌리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킨다.
2007년 출판돼 100쇄를 돌파한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두고 있는 영화 ‘남한산성’. 영화는 소설의 진중한 분위기를 스크린 위에 그대로 옮겨냈다. 그간 ‘마이 파더’ ‘도가니’ ‘수상한 그녀’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흔들림 없는 연출을 보여준다.
“흡족하게 봤다. 동료 배우들과 같이 언배(언론배급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아, 끝까지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영화를 하더라. 처음 만났을 때 감독님께서 남한산성을 표현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도 언급하셨다. 그 추위와 서사적 느낌으로 가겠다고 하셨는데, 연출이 잘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출은 흔들림 없이 단단하더라도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에서 오는 간극이 상당하다. 약 4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소설의 모든 것을 출연진의 말과 연기로써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터. 김상헌과 최명길 외 나머지 인물의 분량과 색이 현저히 삭제됐고, 황동혁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여러 부분 “윤색”됐다. 이에 대해 황동혁 감독은 “처음에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둔 지점이 최명길과 김상헌 이 두 사람의 사상적 대립”이라는 말로 원작을 먼저 읽은 모두에게 양해를 구했다.
김상헌이 남한산성으로 가기 위해 사공과 함께 강을 건너는 장면은 기자가 생각하는 영화와 소설의 구분점이었다. 소설의 경우는 작가가 전지적 시점으로 김상헌의 눈에 담긴 사공의 모습, 사공에게 어떤 일을 행하기 이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활자로써 상세히 서술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소설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묘사의 전부일 뿐 김상헌의 고뇌는 관객의 몫으로 떠넘겨진다. 단점은 아니지만, 이 점에 있어서 소설은 영화보다 더욱 풍부한 감정과 생각할 거리를 읽는 이에게 전달한다.
김윤석은 “대사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전시 상황 아닌가. 적을 남한산성으로 안내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라며, 더불어 그는 “맥락을 잡아낼 수 있는 사람은 빨리 잡아냈을 것이다”라는 말로 영화를 옹호했다.
최명길을 연기하는 배우 이병헌과의 연기 대결은 ‘남한산성’을 기다리는 관객의 첫 번째 기대 요소다. 이병헌이 누구던가. 김윤석과 마찬가지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영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인조(박해일)를 앞에 두고 김상헌과 최명길이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는 장면은 이병헌의 말을 빌리자면 “액션 영화보다 더 치열”한 신이었다.
“사실 집중하다 보면 자신의 연기에 집중할 뿐이다. 상대 배우를 파악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할 순 있다. 이병헌 씨는 굉장히 진지한 배우다. 연구도 많이 한다. 평소 대기하고 있을 때도 느껴진다. 차분하게 시나리오를 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액션 영화보다 더 치열한 신은 이병헌과 김윤석만의 대립이 아닌 배우 박해일을 앞에 둔 대립이기에 에너지가 분산되고 만다. 박해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다만 신하 김상헌과 최명길이 힘껏 쏘아올린 언(言)의 화살 끝이 결국은 조선의 왕 인조를 향한 후 간접 전달되기에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으로 다가올 법도 하다.
“그것이 사극의 매력이다. 삼각형이다. 꼭지점에 인조가 앉아 있고,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지 않고 이야기한다. 김상헌은 ‘명길의 말은’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최명길은 ‘상헌의 말은’이라며 말을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틀렸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현대극 아닌가. 이것이 사극만이 주는 품격이고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적정선 안에서 이성을 무너뜨리지 않고 유지하는. 끝없이 논리를 펴면서 자기 주장을 하는.”
또한, 김윤석은 우리나라 사극의 또 다른 매력으로 눈을 보지 않고 연기하는 점을 꼽았다. 보통의 연기에서 배우는 상대 배우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감정을 소통한다. 하지만 ‘남한산성’에서 김상헌은 인조 앞에서 왕의 눈을 보지 못한 채 척화의 주장을 펼친다.
“사극은 신하가 용안을 함부로 보지 못한다. 그 논리 안에서 또 어떻게든 자기 주장을 내려고 하는 것이 재미다. 처음에는 ‘야, 이거 낯설다.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꿇어앉았는데, 허리를 조금만 들어도 고개를 낮추라고 하고. 갓의 실루엣을 통해서 얼굴이 보이고. 이런 것이 우리나라 사극만이 주는 매력 아닌가 싶다.”
‘남한산성’은 김윤석의 첫 사극 영화이면서, ‘완득이’ ‘남쪽으로 튀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등을 잇는 또 한 편의 소설 원작을 둔 영화다. “소설 원작 영화의 경우 시나리오가 문학적 결과물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아무래도 단단함이 있다. 그만큼의 부담감도 있고, 완성도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고, 한편으로는 해볼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부담감과 책임감에도 불구 다시 한번 소설에 기반을 둔 영화를, 그것도 ‘남한산성’을 택한 그에게서 언뜻 김상헌이 스쳤다. 이와 관련 인터뷰 중간 취재진은 김상헌이 가지고 있는 대쪽 같은 꿋꿋한 태도와 김윤석과의 동질성을 언급했다.
이에 김윤석은 “이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 안 그러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극한 직업이 배우다. 모두 자기 소신이 있다. 박해일 씨도 있고, 이병헌 씨도 있고, 고수 씨도 있고, 조우진 씨도 있고”라며, “‘소신껏 살자’가 소신이다”라고 명언을 전했다. 굳게 믿고 있는 바가 흔들리지 않는 배우 김윤석. 그가 김상헌을 연기했기에 현대인에게는 공감을 모으지 못할 척화가 그토록 진정성 있게 다가왔나 보다. 영화는 10월3일부터 상영 중이다. 139분. 15세 관람가. 손익분기점 500만 명. 제작비 150억 원.(사진제공: 퍼스트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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