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주 기자] 연기, 그리고 배우로서 삶의 방향이.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 곱상한 외모가 매력적인 배우 이종석을 느와르 영화에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광기 어린 잔혹함을 가진 연쇄살인마라면. 비릿함과 거리가 먼 이종석이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에서 연쇄살인마이자 북에서 온 VIP 김광일 역을 맡아 2017년 가장 강렬한 악역으로 연기 변신을 가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어떻게 나올지 두려움에 떨고 있었어요. 보고 나니 속이 시원하네요. 근덴 걱정도 돼요. 곧 방영될 드라마는 멜로인데 영화 때문에 이입에 방해될까봐... 김광일을 보고 팬들이 상처받을까봐 걱정도 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종석은 ‘브이아이피’를 선택했다. 그것도 자진해서. 무엇 때문이었을까.
“느와르 영화는 항상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알다시피 제가 느와르를 한다하면 잘 그려지지 않잖아요. 저 또한 그랬었죠. 그러다 김광일이라는 인물을 봤는데 저의 무기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종석은 느와르를 원했지만 자신의 이미지는 절대 버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 이미지를 더 이용하고 싶다고.
“소진할 수 있을 만큼 소진하고 싶어요. 저의 이상이 제가 가진 걸 다 쓰고 소멸하고 싶거든요. 끝까지 밀어 붙였을 때 거기서 나오는 힘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배우로서 나아가려면 그래야한다고 생각하고요. 어떤 새로운 무게가 생길지 모르니까.”
맞다. 만약 김광일을 거칠고 차가운 강한 외모를 가진 배우가 연기했다면 새로움이 덜했을 터. 그의 아이 같은 외모덕분에 속내를 알 수 없는 기존과 다른 유형의 악역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살인을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접근 자체가 힘들었어요. 광일이를 공감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고요. 정확하게 모르겠어서 애매모호한 그 감정 그대로 표정에 드러났어요. 신기하게도 그 표정이 화면상 괜찮더라고요.”
김광일을 설명하는 이종석의 표정과 말투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원래 항상 캠코더를 가지고 다니면서 제가 연기하는 것을 찍고 보면서 분석해요. 근데 이번에 감독님이 캠코더를 못 보게 하셔서 굉장히 불안했어요. 감독님은 평소 고민을 많이 하는 저를 보고 이번 영화에서는 힘을 많이 뺐으면 하는 바람이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유일하게 박훈정 감독이 터치를 안했던 신이 있다고 말하며 이종석은 웃음을 보였다.
“결말 신을 찍을 때 악이란 악은 다 쓰고 모든 힘을 쏟아낸 것 같아요. 이틀을 찍었는데 첫날 찍고 목이 나갔었어요. 이 장면 때는 감독님이 터치를 안 하시더라고요. 그동안 촬영하면서 감독님이 통제한 부분이 많았는데... 억눌려있었던 걸 다 푼 느낌이었어요.”
이어 이종석은 “김광일에게 최고의 엔딩이라고 생각해요. 내용상 권선징악도 아니고 회개하는 것도 아니라서 더 좋았어요”라고 덧붙였다.
이번 영화를 통해 장동건, 김명민, 박희순 등의 선배 배우들에게 굉장히 많이 조언을 구했다고. 연기변신이 간절했던 것 같기도 하다.
“변신도 변신인데 배우가 연기 변신이라 하는 게 웃긴 것 같아요. 항상 잘하고 싶은 마음이죠. 전에는 내 연기를 보면서 한 반짝 떨어져 보려했고 (연기가) 점점 늘어가는구나 했어요. 근데 연차가 쌓이면서 어느 순간 정체하고 이게 맞는 건가 싶더라고요. 그 순간 저에게 ‘브이아이피’라는 작품이 왔고 촬영하면서 선배님들께 많이 여쭤봤죠.”
이종석은 자신이 정체된 순간도 있었다고 정의내리지만 그가 나온 작품들에 대한 반응은 언제나 좋았다. 이종석이 나오는 작품이라면 믿고 본다는 말이 생길정도. 이에 그도 수긍하며 작품 보는 눈이 자신의 장점이자 무기라고 말했다.
“평소에 작품을 잘 고른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실제로도 반응이 잘나와서 좋아요. 물론 운도 따르는 것 같아요. 우선 대본이 재밌어야 재밌게 찍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심하게 대중적인 취향이라 음원차트에서 1위하는 곡이 좋고, 시청률 1위하는 드라마가 재밌거든요. 먼저 제가 할 수 있는 연기인지 본 다음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관객들도 좋아할지 생각해보고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그런가 하면 이종석은 이번 영화 개봉과 곧 나올 드라마 때문에 군 입대를 연기했다. 그는 입대를 앞둔 상황이지만 심경에 변화가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날들에 대한 심경은 달라보였다.
“사실 아직은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별 다른 게 없어요. 그저 연기 외에 흥미를 느낄 만한 것들을 찾아보는 중이에요. 그동안 저는 연기를 하는 게 일상인 사람이었어요. 그렇다보니 그 외 시간은 무기력했던 것 같아요. 군대 다녀온 후를 기대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성장하기 마련이니까.”
인터뷰를 하는 내내 시종일관 조심스러웠던 이종석. 자신의 새로운 연기 변신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궁금함 때문인 듯 했다.
“‘브이아이피’는 낯설지만 신선한 느낌의 느와르라 생각해요. 관객들께서 이종석의 처음이자 마지말일지도 모르는 악역이라 생각하고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사진제공: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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