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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빠는 딸’ 윤제문이 만난 연기라는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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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기자] “이제는 주연 욕심보다 책임감이 더 강하다”

윤제문은 23년 차의 배우다. 극단 산울림을 통해 연기에 입문했던 1995년과 2017년과의 간극은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3년의 시간이 남는 세월로 수렴한다. 3년의 시간이 거스름돈처럼 느껴질 정도로 까마득한 약 20년의 세월. 영화 ‘비열한 거리’ ‘열혈남아’ ‘우아한 세계’를 통해 대중에게 ‘조폭’ 전문 배우로 각인됐던, 혹은 ‘나는 공무원이다’ ‘고령화 가족’을 공연하며 외모를 반전하는 코미디를 선보였던 것이 전부가 아닌 셈이다.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을 팔자 주름에 감추고 있는 윤제문에게 연기를 물었다. 무작정 ’윤제문에게 연기란?’ 같은 거창한 질문을 건네는 것도 가능했지만, 유장한 시간을 가슴에 품은 채 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그에게는 조금 더 구체적 질문이 필요해 보였다. 이에 초심을 언급하며 연기를 마주하는 태도를 묻자, 처음에는 연기 서적을 탐독하며 무조건 연기 이야기에만 몰두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또한, 그는 미친놈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기를 하다 보면 시작에는 뭣도 모르고 스타니스랍스키의 ‘배우 수업’이라든지 여러 연기에 관련된 책들을 탐독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했으니, 나도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는 식이다. 더불어 초반에는 ‘이게 맞아. 이거야’라는 생각에 선배들과도 후배들과도 계속 연기 이야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누구 연기는 어떻다’ 식의 대화도 많이 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할 얘기가 없어지더라.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역할 또는 그 작품에 미친놈이 되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문자 그대로 미친놈처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미친놈처럼 하는 게 연기다!’가 맞는지 ‘미친놈처럼 하는 게 연기다?’가 옳은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그렇게 열정적으로 미친놈처럼 하는 게 연기의 전부 아닌가 싶다.”

‘미친’이라는 형용사와 ‘놈’이란 명사가 결합된 단어를 수차례 사용하는데도 상스러워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마 그것이 관록의 배우가 취재진에게 베푸는 값진 깨달음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여기 연기에 너무 골몰하거나 몰두한 나머지 미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윤제문의 시선에 닿은 또 하나의 영화 한 편이 스크린에 개봉했다. 패밀리 힐링 역지사지 코미디 영화 ‘아빠는 딸(감독 김형협)’이다.

아빠와 딸의 몸이 바뀌면서 서로의 마음을 엿보게 되는 이번 영화에서 윤제문은 47세 만년 과장 원상태 역을 맡아, 17세 여고생 딸 원도연 역의 정소민과 부녀(父女) 관계를 연기했다. 단순히 사회 통념에 꼭 들어맞는 아빠 나이의 배우와 딸 나이의 연기자가 앙상블을 이룬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 속에서 두 배우는 실제 부녀지간을 의심할 정도의 찰떡 궁합을 선보인다. 특히 웃는 얼굴이 똑 닮은 두 사람이다.

“정소민 양을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워낙 동안이라 ‘그래. 고등학교 몇 학년이야?’라고 물었는데 그 친구가 막 웃더라. 알고 봤더니 아직 졸업 못하고 있는 나이 좀 있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어!’하고 깜짝 놀랐다. 애기 같기만 한 얼굴과 달리 촬영할 때는 욕심이 많은 친구다. 한 신, 한 신 찍어 나갈 때마다 책임감도 강한 모습을 보면 멋있는 친구라고 칭찬하고픈 마음이다. 연기를 사랑하는 훌륭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딸’은 흔히 말하는 ‘바디 체인지’를 소재로 사용했다. 이 말인즉슨 17세 여고생 원도연이라는 배역이 정소민만의 것이 아닌, 만으로 47세에 접어든 개띠 배우 윤제문에게도 숙제였다는 이야기. 마냥 고등학생처럼 보였던 후배 배우의 적역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자신 아닌 타인을 연기하는 몰입에 잔뼈가 굵은 중년 배우에게도 ‘미션 임파서블’이었을 터. 이에 윤제문은 오버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과장을 걱정했다.

“몸은 47세지만, 영혼은 17세인 원상태를 연기하면서 제일 걱정했던 부분은 다른 것 없이 바로 연기였다. 아무래도 여고생 역할은 내가 지금껏 경험했던 적 없고 앞으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상상과 관찰에 많이 의존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이 좀 오버스럽거나 미진한 표현으로 관객에게 다가갈까 봐 걱정이 컸다.”

“크랭크 인 이후에 벽에 딱 부딪치게 되더라. 대본을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몸이 아빠와 뒤바뀐 여고생 역할을 하려니 ‘헉, 이거 어떻게 연기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믹성이 짙은 영화기 때문에 오버가 가중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절제를 하자니 재미없을 것 같고. 그 균형을 잡기가 처음에 굉장히 힘들었다.”

“결국 결론은 촬영장이었다. 김형협 감독님과 (정)소민이랑 찍으면서 현장에서 문제를 풀어나갔다. 특히, 감독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촬영 회차가 늘어날수록 너무 오버하지 않고, 목소리 자체도 지나치게 여성스럽지 않도록 균형을 노력했다.”

혹자는 몸을 영혼의 그릇이라고 부르지만, 사람은 결국 생의 시작부터 끝까지 물리적인 그릇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이유야 어떻든 ‘아빠는 딸’은 누구나 당연하다고 믿는 이런 현실을 전복시키며 스크린 앞 관객들에게 교훈과 웃음을 안긴다.

웃음의 포인트는 여러 가지다. 특히, 딸의 몸에 깃든 아빠 원상태가 회사에서 지켜야 할 필수 덕목으로 책임이라는 단어를 금지하는 신은 세태 풍자라는 블랙 코미디 장르까지 넘보는 명장면. 이와 관련 실제로 배우 윤제문과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큰 딸의 영혼이 뒤바뀔 경우 그는 딸에게 어떤 금기 사항을 전달할 것인지 질문을 건넸다. 허구와 실제를 잇는 기자의 질문에 취재진 사이에서 실소가 나왔지만, 윤제문은 신중히 답을 전했다.

“어떤 주의를 주는 것도 좋지만, 그 대신 딸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싶다. 스스로의 감정이 정답이라고 생각되면 눈치 보지 말고 막 해도 괜찮다고 격려하지 않을까. 남의 눈을 신경 쓰다 보면 잘 못하는 것이 연기다. 사막 위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 배우에게 집중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나올 것이다. 그 정도는 얘기해줄 수 있다.”


윤제문이 ‘아빠는 딸’의 아빠 역할로 캐스팅 된 것은 연기 내공도 한 몫 했겠지만, 대학생과 고등학생 두 딸의 아버지라는 사실도 결정적 요인이었을 테다. 특히, 그는 여고생 연기를 위해 큰 딸과 작은 딸의 행동거지를 배우의 시선으로 관찰했다고 밝혔던 바 있다. 과연 그는 딸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이 당연. 미화시킬 법도 하지만 윤제문은 “별로 말 없는 아버지”라며 그 또한 이 시대의 평범한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렸다.

“어렸을 때는 같이 많이 놀았다. 축구, 목마, 공기 등 정말 자주 함께 했는데 애들이 성장하면서 특히, 고등학교 들어갔을 때부터 멀어지더라. 그게 이번 영화와 비슷한 점이다. 사춘기가 오고, 마침 내가 일이 바빠서 지방 및 해외 촬영을 가다 보니까 만나는 시간도 없어지고, 소원해지고, 애들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요새 집에 들어가면 ‘밥 먹었어? 반찬 뭐 있어?’라고 묻는 것이 대화의 전부다. 아니면 ‘학원 어땠어?’라든지. 얘기는 아마 엄마랑만 하는 것 같다. 엄마가 늘 뒷바라지 해주고 쫓아다니다 보니까 나와는 그런 점에서 멀어지는 부분이 있다. 고민 같은 것도 엄마한테만 얘기하고. 누구 좋아한다는 얘기도 엄마 통해서 듣고. (웃음)”

마지막으로 윤제문은 주연의 부담감을 이야기했다. 과거 그는 한 인터뷰에서 배우로서의 아쉬움으로 주연에 대한 욕심이 있다고 언급했던 바 있지만, 아쉬움이 동반되던 욕심은 오랜 시간 속에서 무거움이 수반되는 책임감으로 변모한 듯 보였다.

“이제는 주연을 향한 욕심보다 주연을 맡았을 때의 책임감이 더 강하다. 무겁게 느껴지고, 부담이 된다. 물론, 주연을 하면 재밌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이끌어 나가고, 그 리듬에 빠져서 탁 끝나는 재미가 있는 것을 사실이다. 그런 것이 참 좋다. 하지만 작품을 책임지는 자리가 또 주연이다. 조연일 경우에는 치고 빠지면 되는데, 주연은 한 작품의 얼굴 아닌가. 그래서 지금은 마냥 주연을 욕심내는 것보다 잘해야 된다는 마음이 더 크다.”


공수래공수거시인생(空手來空手去是人生).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삶이라지만, 그 중간에 많은 짐을 지는 것이 또 인생이다. 17세 원도연의 공부라는 짐, 47세 원상태의 회사라는 짐 등 세상에는 저마다의 짐이 있다. 아마 윤제문에게는 중년 배우가 겪을 ‘연기’라는 짐과 두 딸의 아버지가 만날 ‘가장’이란 짐이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윤제문은 전자는 “쉬운 연기는 없다. 쉬운 연기는 없고...”라며 연기의 어려움을 두 차례나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연기는 쉽지 않을 뿐더러 계속 고민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런 감정일까?’라고 현장에서 수없이 고민한다”라고 첫 번째 짐이 주는 고통을 토로했다.

또한, 그는 후자에 관해 “아버지로서의 짐이 더 무겁지 않을까?”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아이들은 다 걱정이다. 얼마 전에도 애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너희들 아프지 않고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맙다.’ 이게 부모 마음이다. 공부 잘하고, 사회 나가서 잘 되는 것은 부모의 욕심일 뿐이다. 애들은 애들이니까 걱정이 크다. 그런 짐들이 무겁다.”

짐이란 개인이 지키고 싶은 가치다. 그리고 짐에 대한 피로감과 스트레스는 그것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과 정비례할 것이다. 연기가 쉽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윤제문의 행간에는 연기를 수호하기 위해 약 20년의 세월 동안 수없는 시간을 기울였던 그의 노력이 녹아있지 않을까. 아마 ’아빠는 딸’은 그 노력의 최신작일 테다.

한편 영화 ‘아빠는 딸’은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사진제공: 워너비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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